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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1주 화요일-나의 눈은 행복한 눈일까?

by 김레오나르도 posted Dec 0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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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사야서는 메시아의 시대를 예고하는 예언서이고,

우리 교회는 예고된 이 메시아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이사야서는 메시아가 주님의 영을 받으신 분이고

오늘 복음은 성령 안에서 기뻐 즐거워하심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그 기뻐 즐거워하심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 오히려 이것을 드러내 보이신 것에 대한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것>이 무엇이냐가 관건입니다.

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하느님께서 감추신 <이것>,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신 <이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많습니다.

하느님 나라.

하느님 나라의 지혜.

하느님 나라의 행복.

 

그런데 뒤에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이것>은 비밀, 하느님 나라의 비밀인데

하느님 아버지가 누구이신지에 대한 비밀,

그분의 아드님이 누구이신지에 대한 비밀입니다.

 

비밀은 모두가 다 알면 비밀이 아니고

모르기 때문에 비밀이며, 모르도록 감추기에 비밀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당신 아버지 하느님께서

지혜롭다는 사람과 슬기롭다는 사람에게는 이 비밀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이 비밀을 드러내 알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여기서 지혜롭고 슬기롭다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들이 정말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지혜롭고 슬기롭다는 사람은 진짜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이 아니라

자기들이 슬기롭고 지혜롭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일 뿐이며

당시 율법학자나 바리사이 같은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이들은 예수가 하느님께서 보내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모르고

예수께서 드러내 보이시는 하느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것 아무리 많이 알고 모든 것을 잘 알고 있어도

예수께서 오시기로 된 메시아라는 것을 몰라본다면

그래서 예수께서 드러내 보이시는 하느님을 모른다면

그런 지혜나 슬기는 참된 지혜와 슬기가 아닙니다.

 

그러니 참으로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알아보고

그 아드님 예수를 통하여 하느님을 아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을 아는 것은 성령을 받아야지만 알 수 있습니다.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과 두려움의 영을 받지 않으면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실패하였듯 실패하게 됩니다.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생각하는 교만이 하느님께

이 지혜와 슬기의 영을 주십사고 겸손하게 청치 않게 하기 때문이겠지요.

반면에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과 비교할 때 출신들이 비천하고 무식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비천함과 무식함으로 인해 겸손이 성령을 영접하지요.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령을 쫓아냈고 그것을 오늘 보고합니다.

그 얘기를 듣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성령을 영접했음에 대해

기뻐하시며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나의 눈은 행복한 눈입니까?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이 대림절이 끝나면

나의 눈은 기다리던 분을 보는 행복한 눈이 되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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