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서 로마서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데
바오로 사도는 여기서 여러 사람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이 안부는 바오로 사도 개인의 인사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인사를 통하여 로마 교회를 세우는 데 있어서 애쓴 사람들의
수고와 공로를 자신이 치하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알고 본받도록 추켜세우는 것입니다.
로마 교회는 사실 바오로 사도가 가고자 했던 곳이지만
이 편지를 쓸 때까지는 가지 못한 곳이지요.
그러니까 자기가 가서 직접 세운 교회들과 달리 자기의 수고가 없었음에도
다른 사람들에 의해 하느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있음에
한 편으로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고
다른 한 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에 대한 신비감을 바오로 사도는 느끼는 것입니다.
저도 그런 느낌을 가진 적이 있고 그래서 그 느낌을 압니다.
북한에 갔을 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지만 그보다 훨씬 전인 30여 년 전에
프란치스코처럼 순회선교를 하겠다는 열정만으로
무작정 목포에 갔고, 목포의 한 본당을 찾아가 그곳 신부님의 소개로
자은도라는 섬으로 가서 그곳 사람들과 낮에는 똑같이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미사도 드리고 교리도 하는 그런 시간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자은도는 제가 지금도 고향이라고 여기고 있으며
지금의 저희 순회 공동체가 20여 년 전에 시작되었고,
그때 심장판막증으로 고생하던 젊은이를 서울로 데리고 와
수술 받게 한 인연으로 지금도 자은도에 가면 그 분을 만나곤 합니다.
그때 제가 느낀 것이 바로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먼 섬, 외딴 섬에까지
우리의 거룩한 교회와 주님의 거룩한 가르침이 알려지게 하셨으며
제가 찾아가기 훨씬 전에 누군가가 신앙의 씨를 뿌리고 키웠다는 신비감,
예, 바로 그 신비감이었지요.
바오로 사도는 이런 신비감으로 이렇게 얘기합니다.
“하느님은 내가 전하는 복음으로,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로,
또 오래 감추어 두셨던 신비의 계시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아 주실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16,25)
그리고 감춰졌던 신비가 이제와 드러나게 된 이유를 이어서 말합니다.
“이제는 모습을 드러낸 이 신비가 모든 민족들을 믿음의 순종으로 이끌도록,
영원하신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예언자들의 글을 통하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16,26)
그렇습니다.
로마 교회뿐 아니라 어느 교회건, 어느 공동체건
그 교회와 공동체가 있기까지 내가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과 수고가 있었습니다.
나만 하느님의 도구가 아니고 이들도 하느님의 도구이고,
오히려 이들이 흘린 피땀 덕분에 오늘의 내가 덕을 보고 있는 거지요.
우리는 너무 미시적으로 작은 문제에 집착하여 공동체를 보기도 하지만
거시적으로 그리고 통시적通時的으로 공동체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바오로 사도처럼 하느님의 역사하심에 감탄하며
신비감에 취하여 다음과 같이 찬미를 드릴 수 있을 겁니다.
“홀로 지혜로우신 하느님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1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