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0주 토요일-2015
“그들은 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이 잘 되라고 하느님의 원수가 됐지만,
선택의 관점에서 보면 조상덕분에 여전히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1장에서 바오로 사도는 두 번의 질문을 합니다.
“나는 묻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물리치신 것입니까?”(1)
“내가 묻습니다. 그들은 걸려 비틀거리다가 끝내 쓰러지고 말았습니까?”(11)
1절에서는 주어가 하느님이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배척하신 것인가 묻는 것이고,
11절에서는 주어가 이스라엘이며
이스라엘은 이제 완전히 낙오자가 된 것인가 묻는 것입니다.
하느님 편에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셨는지 묻는 것이고,
이스라엘에게 그래서 구원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는지 묻는 것입니다.
오늘 로마서 말씀은 이에 대해서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두 번의 질문에 똑같이 아니라고 강하게 답합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결코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위대함이자 약점이 바로 포기 못하시는 사랑이잖아요?
어머니 사랑만 해도 그렇지요.
어머니 사랑이 위대한 것은
아무리 망나니짓해도 그 자식을 포기치 못하기 때문이고
포기를 못하기 때문에 자식들이 그 약점을 이용하잖아요?
하느님의 은사는 철회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은사를 철회하신다면 그것은
하느님 사랑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진실하고 완전할수록 누구의 무엇 때문에
무엇을 주기도 하고 주지 않기도 하는 것이 아니죠.
말 잘 듣는 자식에게는 사랑도 주고 재산도 주고,
말 안 듣는 자식에게는 아무런 국물도 없다면
부모의 사랑에 의한 사랑이 아니라 자식의 덕에 의한 사랑이니
부모의 사랑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자식의 덕이 위대한 거지요.
그러므로 하느님의 사랑은 당신 사랑의 원리에 따라 사랑하고,
당신 사랑의 본성에 따라 결코 은사를 거두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지나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소명도 철회치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은사를 계속 주시며 소명 또한 계속 주십니다.
아니, 계속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신 소명을 거두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은사를 주실 때나 소명을 주실 때 즉흥적으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받아들일 의지가 있을 때나 없을 때,
우리가 잘 할 수 있을 때나 없을 때,
그 모두를 다 아시고, 그 모든 경우를 염두에 두시고 주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늦게라도 정신을 차리는 것입니다.
늦게라도 정신 차려 은사를 은사로 받아 모시고,
은사를 주신 그 뜻을 알아, 주신 소명도 늦게라도 수행하는 겁니다.
지금이라도 그것을 깨닫는 우리가 되기를 바라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