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누가 자비를 구할까?
말할 것도 없이 자비를 필요로 하는 사람일 것이다.
오늘 복음의 바르티매오와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자비가 필요 없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자비가 필요 없는 사람은 없지만
자비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그렇다면 자비가 필요한데 왜 필요로 하지 않을까?
이것이 인간인 것이다.
자비가 필요한데도 자비가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이 인간이다.
교만 때문이고, 자존심 때문이다.
자비가 필요한 불쌍한 자신임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하는데
왜 내가 불쌍하냐고 자신과 남에게 분노하는 것이다.
불쌍한 자신을 혐오하는 것이며
자비보다도 불쌍하지 않은 것이 더 중요한 것이며,
하느님의 자비보다도 자기의 자존심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남에게 자비를 구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 전에 불쌍한 자기 자신에 대한 자비가 없는 사람이고,
그래서 근원적으로 자비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자비를 구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가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비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며,
자비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닌 것이 아니다.
특히 자신의 영적인 비참함을 모르는 나이다.
다른 사람을 불쌍하다고 하며 나의 불쌍함을 모른다.
나는 무조건 행복하다고 하며 나의 불쌍함을 모른다.
그러기에 나는 영적으로 눈이 멀었는지도 모른다.
바르티매오는 육신의 눈이 멀었지만 나는 영혼의 눈이 먼 것이다.
하느님의 자비를 보지 못하면 그것이 영적 눈멀음이 아니고 무언인가?
그러니까 내가 행복하다면 불쌍한 내가 아니기에 행복한 것이 아니다.
불쌍한 나임에도 사실은 자비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을 모른다면
지금은 몸도 건강하고 부족한 것이 없어서 행복할지라도
이빨만 빠져도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불쌍해질 것이다.
설사 건강이 이상 무일지라도 은총 가운데 살지 않고,
죄 중에 계속 살아간다면 그것이 진정 불쌍한 것인데도
그 불쌍함을 모르고 그래서 하느님 자비를 보지 못한다면
그것이 나의 불쌍함이고 영적인 눈멀음임을 묵상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