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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연민의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는 사랑만이,

by 요셉 posted Jun 1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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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자신이 옳다고 주장했던 것이 아니라고,
그래서 스스로가 틀렸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마치 죽음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자기 성찰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다른 이가 잘못 했을 때는 가차 없이 비난 섞인 말로 질타를 하면서
자신이 잘못했을 때는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부드러운 말로
상대가 말해 주기를 바라는 제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지,
다른 이에게 이해와 용서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다른 이의 이해와 용서가 나에게도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참으로 이기적인 발상이지만 솔직한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이해받아야 하고 용서받아야 할 존재이기에
하느님께서 용서의 하느님, 자비의 하느님이신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고해성사를 제정하신 까닭도,
바오로 사도가 은총은 다른 것이 은총이 아니라
기회가 은총이라고 했음도
바로 이러한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면서 기도하는 신비체 가족입니다.
하느님을 한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가는 하느님 가정의 가족,
즉, 너와 내가 우리라고 하는 운명공동체로
함께 살아가는 가족 말입니다.
너와 내가 우리라고 하는 곳에 성령께서 함께 계신다면,
어떠한 이유로든 분열을 조장하는 곳에는
성령께서 계시지 않는다 말할 수 있을 겁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개인주의로 혼자만 잘사는 방식으로
당신께 가는 것을 원치 않으실 겁니다.
왜냐하면 부모의 마음이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듯이,
아니, 지지리도 못난 자식에게 더 연민이 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기에 어느 누구도 소외 시킬 수 없고 자신이 앞서 갈 수 있는
능력에도 불구하고 뒤쳐져 오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속도를 늦출 줄
아는 배려의 마음이 우리가 닮고자 하는 예수님의 연민의 마음이고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상대가 나를 포기하고 돌아서도 내가 그를 포기할 수 없는 마음,
(소유와 집착이 아닌) 그 마음이 바로
“그리스도의 수난”의 한 장면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시는 그 길목에서 우리를 바라보시던
예수님의 연민의 눈길에서 짙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 예수님의 연민의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는 사랑만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상한 영혼을 치유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미움은 미움을 낳고,
비난은 비난을 낳고,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는 말,
요 며칠 이 게시판을 읽으면서 더욱 진하게 다가오는 구절입니다.
부족한 제 글을 끝까지 읽어주시는 연민의 눈길이 머무는
이곳이 있어 행복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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