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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2월 2일 주님봉헌축일(봉헌생활의 날)

by 유사 posted Feb 0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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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봉헌 축일( 2월 2일)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이자 봉헌생활의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 많은 수도회들, 특히 여자 수도회들이 서원식을 거행합니다. 4세기 말에 에테리아라는 여성이 예루살렘을 순례하였습니다. 에테리아는 이 순례 후 여행기를 썼는데, 흥미롭게도 이 여행기는 1887년이 되어서야 발견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 기록에서 예루살렘에서 행하는 두 개의 교회전례에 특별히 주목했습니다. 하나는, 1월 6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경축하는 주님 공현 축일이고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40일 후인 2월 15일에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한 것을 기념하여 축제분위기 속에 화려하게 거행하는 행렬이었습니다.

오늘의 축일은 구약 탈출기 13,11-12이 말하는 법, 곧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는 법에 따라 아기 예수를 성전에 봉헌한 것을 기념합니다. 이 전례거행은 5세기와 6세기에 걸쳐 서방교회 전역에 퍼져나갔습니다. 그런데 서방교회는 주님의 성탄을 12월 25일에 거행했으므로, 주님 봉헌 축일이 2월 15일에서 2월 2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8세기가 시작되면서 세르지오 교황은 촛불 행렬을 도입했고, 8세기 말에는 오늘까지 지속되어 온 초 축복 및 축복받은 초를 나누어주는 관례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영어권의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라는 말에서 “크리스”를 빼고 그 대신 초를 뜻하는 “캔들”을 집어넣어 “캔들마스”라고 부르기도합니다.

이 축일의 의미에 대한 유일하고도 지극히 중요한 기록인 오늘의 복음 독서인 루카복음 2, 22-39은 우리가 유념해야 할 세 가지를 말해주고 있다고 봅니다.

우선, 아기 예수님께서 성전에 봉헌되신 것은, 미래에 시작되는 공생활이 하느님 아버지와 인류에 대한 봉헌의 삶이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수난과 십자가상의 죽음으로 봉헌의 삶이 절정에 이르게 됨을 예시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받으신 세례가 미래에 십자가상에서 받으실 피의 세례를 예시한 것처럼, 이 봉헌이 예수님의 미래 삶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중 아버지의 뜻인 인류 구원을 위해 말씀선포와 애덕실천과 기도에 몸 바치셨고, 마침내는 죄인들인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수난과 죽음까지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가오는 참혹한 죽음을 바라보시면서 아버지께 긴 기도를 바치셨는데, 아버지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저는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요한 17, 4).“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에 온전히 몸 바치심으로써 아버지께 온전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봉헌의 삶이 수도자이건 성직자이건 평신도이건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실천해야 할 봉헌의 삶의 원형이요 모범이 됩니다. 특히, 수도자들은 자신들을 하느님께 봉헌하기 위해 세상 사람들이 최고의 행복이요 선으로 여기는 성생활과 재물의 향유와 의지의 자유로운 사용을 포기하는 정결, 청빈, 순명의 세 가지 서원을 발하고 또 그것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봉헌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예수님을 본받아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만유 위에 사랑하며, 하느님의 사랑에 힘입어 모든 사람,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하느님의 뜻을 헤아려 그 뜻에 온전히 순종할 것을 요구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때로는 내게 기쁘고 쉬운 일로 드러나지만, 때로는 견디기 어려운 시련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내가 진정으로 하느님께 봉헌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다면, 어떤 상황도 감내하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조 아브라함은 하느님으로부터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을 받았을 때, 아버지로서의 한없는 자식 사랑을 넘어서서 눈물을 머금고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 했습니다. 이것이 봉헌생활의 최고의 모범이 되었고,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고통을 두려워하시면서도 우리 구원을 위해 기꺼이 당신을 십자가상의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며칠 전 충남의 해미 성지를 다녀왔는데, 그곳의 많은 순교자들 중에는 이름 없는 노비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은 이 세상에서도 천민으로 차별당하면서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고생하며 살았는데, 하느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혹심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죽어갔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분들의 이름을 몰라도, 하느님 나라의 생명의 책에는 그 이름들이 모두 적혀있을 것입니다. 이 순교자들이야 말로 봉헌생활의 가장 숭고한 모범을 남긴 분들입니다.

세 째로, 오늘 복음에 잠시 나타나는 두 인물, 시메온과 한나를 바라보며 묵상해야 합니다. 이 두 분은 신앙에 독실하고 의롭게 사는 이들이 어떤 축복을 받는 지를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이들의 독실함은 구원자 예수를 만나는 축복을 얻게 해주었습니다. 시메온이 아기 예수를 두 팔에 받아 안고 감격에 북받쳐 한 말은 우리 교회의 공식기도의 하나인 성무일도서 끝기도의 찬가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시메온과 함께 다시 한 번 감격 속에 이 찬가의 한 부분을 바치도록 합시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한나는 긴긴 세월동안 과부로서 외로움의 고통 속에 살아오면서도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긴 여자 예언자입니다. 이 여인 역시 아기 예수를 만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우리도 시메온과 한나처럼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나라가 가져다 줄 구원을 찾고 기다릴 때, 이 현세에서는 내적으로, 앞으로 올 세상에서는 예수님을 얼굴을 맞대고 뵙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주님 봉헌 축일을 맞아, 나의 봉헌생활을 되돌이켜 보면서 다시금 마음과 영혼과 육신을 다해 주님을 섬기기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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