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우리 가운데는 사랑을 받는 사람이 있고, 미움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주는 사람의 탓인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받는 사람의 탓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주는 사람이 사랑을 주기에 사랑을 받고,
미움을 주기에 미움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주는 사람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사랑을 주고 미움을 주는데도
받는 사람이 어떤 사람은 사랑과 미움 중에 사랑을 받고,
어떤 사람은 사랑과 미움 중에 미움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마치 투수와 타자의 관계에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력이 좋은 타자는 좋은 볼만 치는데
실력이 떨어지는 타자는 안 좋은 볼에만 손이 갑니다.
그런데 야구의 경우에는 선구안選球眼,
곧 좋은 공과 나쁜 공을 고르는 눈이 떨어져서 그러지만
사랑과 미움의 경우에는 그것이 사랑인지 미움인지 잘 아는데도
사랑은 받지 않고 굳이 미움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이런 사람은 얼마나 미련하고, 얼마나 불행합니까?
왜 기껏 주는 사랑은 받지 않고 미움만 받으며 살아갑니까?
그런데 그것이 너무도 역설적입니다.
사랑만 원하기 때문입니다.
100% 깨끗하기를 원하고, 그 원하는 것이 집착의 수준이라면
조금만 더러워도 더러운 것에 눈이 꽂이는 것처럼
사랑만 원하고, 완전한 사랑에 집착할 때 미움에만 눈이 갑니다.
그래서 그 수많은 사랑을 줬음에도 그 사랑은 받지 않거나
받았다고 생각지 않고 미움을 받거나 미움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분명 사랑을 줬는데도 자기는 미움을 받는다고 믿는 경우입니다.
주는 사람의 사랑이 받는 사람에게 미움으로 둔갑하는 것이지요.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집니까?
그것은 주는 사람의 사랑과 받는 사람의 사랑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주는 사람은 이런 사랑을 주는데 받는 사람은 다른 사랑을 원하기에
그것은 사랑이 아니고 미움이라고 생각하거나
사랑의 수준이 차이가 나서 주는 사람은 높은 차원의 사랑을 주는데
받는 사람은 그것을 미움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가장 쉬운 예를 들어서 어린이는 약을 줬는데 독을 줬다고 생각지요.
하느님의 사랑의 경우도 이와 똑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는데
우리 중에는 우리를 단죄하러 오셨다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단죄를 받는 것은 주님께서 단죄를 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구원을 주러 오셨는데 그 구원을 받지 않음이 단죄를 받는 것이라고.
아니, 구원을 받지 않는 것은 구원의 주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니
주님을 믿지 않는 것 때문에 단죄를 받는 것이라고.
이렇게 또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불행은 행복을 선택하지 않음이고,
행복을 선택하지 않음은 그것이 행복임을 믿지 않기 때문이듯
구원을 선택하지 않음이 우리의 불행이요, 단죄이고,
구원을 선택하지 않음은 그것이 구원임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과 행복을 선택하는 우리,
구원과 행복을 선택하는 오늘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우리 모두는 그 사랑에서 나왔기에 부어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믿고 받은 사랑을 자연스럽게 나누는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이론적으로는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문제는 가톨릭 신앙은 체험신앙이기에 사랑을 받고 있다는 체험을 어떻게라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래서 기회가 은총이라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을 받았다는 경험과 기억이 없으면 마른 나무에서 물을 짜는 것처럼 억지로 믿어야 하고
억지로 느껴야 하는 그 어려움은 얼마나 심하겠는가.....................!제 체험으로는 그렇습니다.
지금 내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면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우울해 하는
사람에게 다가가 그 마음을 헤아려주고 어떻게 해서라도 사랑을 받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몫이고 제가 행복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절감하면서 오늘을 살겠습니다.
"구원과 행복을 선택하는 우리,
구원과 행복을 선택하는 오늘이 되어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