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iz.org중국 연길에 살고 있는 최요안(ofs)입니다.
지난 일주일동안 중국의 중원지방을 다녀왔습니다.
중원도 넓으니... 정확히 말해서 산서성의 태원시 일원이었습니다.
태원(타이위앤)은 산서성의 성도이고, 일본이 시끄럽게 굴던 20세기초에는
중국의 4대군벌인 염석산이 활동하던 지방이기도 합니다.
이번 태원지방 여행이 더욱 감동적이었던 것은
바로 이 지방이 씨오쑝띠후이(小兄弟會=작은형제회)의 전교지역이었다는 점입니다.
산서성은 현재 8~9개의 교구(부정확합니다.)가 있는데
태원교구만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태원교구 곳곳에
작은형제회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었고,
그 이전부터 형성되었던 여러곳의 교우촌도 직접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주로 머물렀던 교우촌은 산서성 타이위앤(太原)시 칭쉬(靑徐)현 류허(六合)촌이었습니다.
인구는 약 7천명인데 6천5백여명이 신자라고 합니다.
그 성당에서 첫 저녁미사를 드리는데 제대 왼쪽에
낯익은 성화가 커다랗게 붙어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오상 방지거(프란치스코)였습니다.
왼쪽에는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파도바의 안토니오성인도 있었습니다.
요즘 휴가와 방학기간이라 평일미사인데도 약 7~8백명의 신자들이 참석하였습니다.
주일에는 두대의 미사에 거의모든 신자인 6천여명이 참례한다고 합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정말 귀한 풍경을 목격하였는데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바글바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약 1천여명이 있다고 합니다.
한집에 아이들이 보통 5-6명이고, 작은 집도 4명, 많은 집은 12명까지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중국의 산아제한정책이 전혀 먹히지 않는 산아제한의 '해방구'였습니다.
태원교구에는 3곳인가 교우촌만은 1가정 1자녀 이외에는
벌금을 물리는 정책이 적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다른 교우촌인 타이위앤시 진위앤구에는 상황은 마찬가지였는데,
그곳의 특이한 점은 성녀 아숨다(마리아 방지거 전교회=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가
활동하다가 숨진 곳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성녀의 무덤이 마을 뒷산 교회묘지에 그대로 있다고 합니다 .
또 뒷산 중턱에는 옛날 작은 형제회의 수도원이 아직 겉모습이 성한채로 서있었습니다.
현재는 교우 몇집이 주고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어 점점 망가지고 있어 안타까웠습니다.
수도원뒤로 14처를 따라 올라가니 산 정상에 웅장한 성모성당이 서 있었습니다.
마을 성당에는 썽위앤후이(聖言會=거룩한 말씀의 회) 남녀수도회가 들어와 있었는데
들어오는 과정에 문제가 있어 교구와 관계가 좋지 않은상태라고 합니다.
타이위앤시의 주교부(주교좌? 교구청)에 갔더니 성당 왼쪽에
성프란치스코의 아름다운 성상이 서 있었습니다.
주교좌 성당의 주보성인이 프란치스코라고 합니다.
또 타이위앤 교구의 신학교에 가보았는데 옛날 건물이 그대로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짜임새있고, 아름다웠습니다.
이곳이 산서지방의 전교본부로 작은형제회 수도원이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수도원에서 신학을 가르쳐 사제를 양성해
지금도 신학교에는 수도원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고,
신학생들을 수사라고 부르는 전통이 남아 있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너무 소중한 여행이었습니다.
마을 호구(주민등록)가 그대로 교적인 마을,
신자라는 것이 자랑인 마을,
장래의 희망인 아이들이 징그럽도록(?) '바글바글'하는 마을,
처음 가본 중원의 상황은 너무 놀랍고 새로웠습니다.
<사진은 작은형제회의 옛수도원입니다.>
지난 일주일동안 중국의 중원지방을 다녀왔습니다.
중원도 넓으니... 정확히 말해서 산서성의 태원시 일원이었습니다.
태원(타이위앤)은 산서성의 성도이고, 일본이 시끄럽게 굴던 20세기초에는
중국의 4대군벌인 염석산이 활동하던 지방이기도 합니다.
이번 태원지방 여행이 더욱 감동적이었던 것은
바로 이 지방이 씨오쑝띠후이(小兄弟會=작은형제회)의 전교지역이었다는 점입니다.
산서성은 현재 8~9개의 교구(부정확합니다.)가 있는데
태원교구만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태원교구 곳곳에
작은형제회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었고,
그 이전부터 형성되었던 여러곳의 교우촌도 직접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주로 머물렀던 교우촌은 산서성 타이위앤(太原)시 칭쉬(靑徐)현 류허(六合)촌이었습니다.
인구는 약 7천명인데 6천5백여명이 신자라고 합니다.
그 성당에서 첫 저녁미사를 드리는데 제대 왼쪽에
낯익은 성화가 커다랗게 붙어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오상 방지거(프란치스코)였습니다.
왼쪽에는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파도바의 안토니오성인도 있었습니다.
요즘 휴가와 방학기간이라 평일미사인데도 약 7~8백명의 신자들이 참석하였습니다.
주일에는 두대의 미사에 거의모든 신자인 6천여명이 참례한다고 합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정말 귀한 풍경을 목격하였는데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바글바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약 1천여명이 있다고 합니다.
한집에 아이들이 보통 5-6명이고, 작은 집도 4명, 많은 집은 12명까지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중국의 산아제한정책이 전혀 먹히지 않는 산아제한의 '해방구'였습니다.
태원교구에는 3곳인가 교우촌만은 1가정 1자녀 이외에는
벌금을 물리는 정책이 적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 다른 교우촌인 타이위앤시 진위앤구에는 상황은 마찬가지였는데,
그곳의 특이한 점은 성녀 아숨다(마리아 방지거 전교회=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가
활동하다가 숨진 곳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성녀의 무덤이 마을 뒷산 교회묘지에 그대로 있다고 합니다 .
또 뒷산 중턱에는 옛날 작은 형제회의 수도원이 아직 겉모습이 성한채로 서있었습니다.
현재는 교우 몇집이 주고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어 점점 망가지고 있어 안타까웠습니다.
수도원뒤로 14처를 따라 올라가니 산 정상에 웅장한 성모성당이 서 있었습니다.
마을 성당에는 썽위앤후이(聖言會=거룩한 말씀의 회) 남녀수도회가 들어와 있었는데
들어오는 과정에 문제가 있어 교구와 관계가 좋지 않은상태라고 합니다.
타이위앤시의 주교부(주교좌? 교구청)에 갔더니 성당 왼쪽에
성프란치스코의 아름다운 성상이 서 있었습니다.
주교좌 성당의 주보성인이 프란치스코라고 합니다.
또 타이위앤 교구의 신학교에 가보았는데 옛날 건물이 그대로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짜임새있고, 아름다웠습니다.
이곳이 산서지방의 전교본부로 작은형제회 수도원이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수도원에서 신학을 가르쳐 사제를 양성해
지금도 신학교에는 수도원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고,
신학생들을 수사라고 부르는 전통이 남아 있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너무 소중한 여행이었습니다.
마을 호구(주민등록)가 그대로 교적인 마을,
신자라는 것이 자랑인 마을,
장래의 희망인 아이들이 징그럽도록(?) '바글바글'하는 마을,
처음 가본 중원의 상황은 너무 놀랍고 새로웠습니다.
<사진은 작은형제회의 옛수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