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
훤칠한 키에
백옥같은 피부,
어깨까지 길게 늘어진 연갈색 곱슬머리,
턱과 코의 멋진 수염,
늘씬한 몸매,
빠져들 것만 같은 눈매 등
영화에 많이 등장하는 그런 모습이
떠오를게다.
성모님 모습도 그렇다.
성모님은 우선 8등신으로 늘씬한 몸매를 지녀야 하고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시다.
누가 봐도 한눈에 성모님인 줄 알아보는 그런 모습일게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신다>고 증언한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은
자신은 그분이 누구신지 몰랐었다고 두번이나 이야기한다.
아예 몰랐던 분이 아니고
친척이었고 잘 알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줄은 꿈에 몰랐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 하느님께서
성령이 내려와 머리 위에 머무는 그 사람이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암시 내지는 계시를 준 적이 있었고,
수많은 사람을 세례주면서
그 사람이 누굴까 계속 궁금해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성령이 바로 내가 잘 알고 있었던
예수, 바로 그분 위에 머물더라는 것이다.
그것을 똑똑히 목격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이 바로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라고
증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요한의 증언을 통해 우리는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분은 우리가 잘 아는 그런 모습으로 알아뵈올 수 없다는 것.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모습으로 오시지 않는다는 것.
그분은 내가 아는 사람, 우리 가운데 있는 사람들 중에서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신다는 것.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와 하등 다들 바 없는 사람들을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신다는 것이다.
보통 기도하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짠!>하고 나타나시기를
기대할 지도 모른다.
또 어떤 이는 예수님을 뵈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상본에서 본 예수님, 영화에서 본 그런 예수님이었다면
그건 진짜 예수님이 아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당신을 보여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잘 아는 사람 모습으로 나타나실 때만
그분이라고 하실 수 있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
하느님께서는
어떤 표징을 주신다.
저 사람이 바로 그분이라고...
성 프란치스코에게는
길에서 만난 나환우, 늘 볼 수 있었지만
역겨워서 피해 다녔던 바로 그분이
예수님이셨다.
내가 결코 그분이 예수님일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사람들을 통해서 그분은 당신 자신을 드러내실 것이다.
자, 오늘
그분을 찾아보자.
어디에 계신가?
그리고
우리도 요한처럼 이야기하자.
바로 그분입니다.
내가 확신코 증언합니다.
바로 저분입니다.
나도 저분인지는 몰랐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래서 확신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자신을 보여주시지만
우리가 그분을 알아뵐 눈이 없을 뿐이다.
오호통재라!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
훤칠한 키에
백옥같은 피부,
어깨까지 길게 늘어진 연갈색 곱슬머리,
턱과 코의 멋진 수염,
늘씬한 몸매,
빠져들 것만 같은 눈매 등
영화에 많이 등장하는 그런 모습이
떠오를게다.
성모님 모습도 그렇다.
성모님은 우선 8등신으로 늘씬한 몸매를 지녀야 하고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시다.
누가 봐도 한눈에 성모님인 줄 알아보는 그런 모습일게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신다>고 증언한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은
자신은 그분이 누구신지 몰랐었다고 두번이나 이야기한다.
아예 몰랐던 분이 아니고
친척이었고 잘 알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줄은 꿈에 몰랐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 하느님께서
성령이 내려와 머리 위에 머무는 그 사람이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암시 내지는 계시를 준 적이 있었고,
수많은 사람을 세례주면서
그 사람이 누굴까 계속 궁금해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성령이 바로 내가 잘 알고 있었던
예수, 바로 그분 위에 머물더라는 것이다.
그것을 똑똑히 목격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이 바로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라고
증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요한의 증언을 통해 우리는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분은 우리가 잘 아는 그런 모습으로 알아뵈올 수 없다는 것.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모습으로 오시지 않는다는 것.
그분은 내가 아는 사람, 우리 가운데 있는 사람들 중에서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신다는 것.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와 하등 다들 바 없는 사람들을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신다는 것이다.
보통 기도하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짠!>하고 나타나시기를
기대할 지도 모른다.
또 어떤 이는 예수님을 뵈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상본에서 본 예수님, 영화에서 본 그런 예수님이었다면
그건 진짜 예수님이 아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당신을 보여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잘 아는 사람 모습으로 나타나실 때만
그분이라고 하실 수 있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
하느님께서는
어떤 표징을 주신다.
저 사람이 바로 그분이라고...
성 프란치스코에게는
길에서 만난 나환우, 늘 볼 수 있었지만
역겨워서 피해 다녔던 바로 그분이
예수님이셨다.
내가 결코 그분이 예수님일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사람들을 통해서 그분은 당신 자신을 드러내실 것이다.
자, 오늘
그분을 찾아보자.
어디에 계신가?
그리고
우리도 요한처럼 이야기하자.
바로 그분입니다.
내가 확신코 증언합니다.
바로 저분입니다.
나도 저분인지는 몰랐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래서 확신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자신을 보여주시지만
우리가 그분을 알아뵐 눈이 없을 뿐이다.
오호통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