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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연중 1주 토요일-<더 죄인>과 <덜 죄인>

by 김레오나르도 posted Jan 1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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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님의 동선을 따라서 묵상을 해봤습니다.

주님께서는 한 곳에 편히 안주하시는 분이 아니라

정말 부지런히 그리고 자리를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찾아가는 분이시라는 것이 잘 드러나는 오늘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로 나가셨다. 군중이 모두 모여 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예수께서 호숫가로 나가셨는데 왜 뜬금없이 호수로 나가셨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같으면 머리를 식힐 겸 바람을 쐬러 나가곤 하지만

주님께서 그런 이유로 호숫가를 산책하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가르침의 장소, 복음 선포의 장소로 호숫가를 선택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호숫가가 복음 선포의 장소로 적합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주님께서는 왜 호숫가를 선포의 장소로 택했을까 묻게 됩니다.

 

이에 대해 호수는 주님께서 주로 활동하시던 무대이기에

그런 연유로 호숫가에서 복음을 선포하신 것이지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주님께서는 복음 선포의 대상을 가리지 않으셨고,

그래서 장소도 가리지 않으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서울 역에 가면 개신교에서 나와 예배를 보는데

노숙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려면 교회에서 나와 서울 역으로 가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예수님과 프란치스코 성인이 하셨던 복음 선포 방식을

오늘날은 개신교 신자들이 하고 있다고 반성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지금 교황 프란치스코도 자주 (교회) 밖으로 나가라고 말씀하시죠.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세관의 레위를 지나쳐가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당신을 따르라고 초대하시고 레위는 따라나섭니다.

그런데 얼핏 보면 주님의 부르심이나 레위의 따름이 아주 즉흥적입니다.

 

그런 것인가요?

제 생각에 결코 즉흥적인 것일 리가 없고,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면 묘사를 그렇게 한 것일 겁니다.

첫 제자들의 부르심 때도 그렇고 레위를 부르실 때도 마찬가지인데

마르코복음은 주님의 부르심과 제자들의 응답을 묘사할 때 거두절미합니다.

 

제 생각에 그것은 주님의 부르심의 절대성과

제자들의 응답의 즉각성을 강조하기 위함일 겁니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부르심에 즉각 응답치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주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 들려주는 말일 겁니다.

 

요즘 갈수록 교회 내 직책 선출이나 수도회 인사이동 시

갖가지 이유로 수락을 거부하거나 수락하더라도 즉각 수락치 않습니다.

선출이나 인사명령을 주님의 부르심으로 생각지 않거나

아무리 주님의 부르심이라도 싫은 것은 수락할 수 없다는 뜻일 겁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다음은 주님께서 레위의 집에서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하신 것인데

여기서 죄인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인지 생각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나도 죄인인데라는 생각과 더불어 모두 죄인인데

누군 죄인이고 누군 죄인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간음한 여인을 죽이려고 할 때

주님께서 죄 없는 사람부터 치라고 하니 모두 떠나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남을 죄인으로 차별하며 자신이 죄인이 아닌 듯 착각하는 죄인과

자신도 죄인임을 아는 죄인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성인이 아닌 이상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른 사람을 <더 죄인>으로 몰면서 자기는 <덜 죄인>이 되려고 합니다.

 

오직 주님만 죄인을 가리지 않고 식사하실 뿐 아니라

외려 그래서 당신이 필요하다고 하시는 분임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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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풍경소리 2015.01.17 09:31:03
    그렇습니다.
    삶 안에서 주고 받는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다보면
    자신이 말하면서도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그 의미도 모르고 무심코 하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물론 저도 그 안에 포함되면서......

    말 한 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듯이..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고 또 말씀이 사람이 되신것처럼
    언어가 지닌 의미나 힘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대화를 통해서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는 언어가 갖고 있는
    위력을 다시 한번 깨달으면서 왜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이 세상에 오셨는가를 떠올려 봅니다.

    "남을 죄인으로 차별하며 자신이 죄인이 아닌 듯 착각하는 죄인과
    자신도 죄인임을 아는 죄인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죄인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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