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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룡"이란 고교 동창녀석

by posted Oct 0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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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평화와 선.

가끔 이처럼 불면의 밤을 지내노라면,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이 된다.
낮동안 일하는 데 지장은 되지만...

어제 '산청 성심원'에서 가정사 축복식이 있어 참석했었다.
와중에 한 통의 전화- "박승룡"이란 낯선 목소리.
기억력이 비상해선지, 그 녀석이 3학년 2반 같은 반 아이였다는 것과
서글서글하니 공부도 잘했으며 건강한 덩치여서
규율부장까지 했었다는 걸 금방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웬일로 전화를 한고하니, 동창회 총무를 맡았단다.

제법 긴 통화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편에선 주로 고교 동창들과 넘 적조할 수 밖에 없었다는...
그렇다, 난 그 애들과 뾰족히 만나야 할 구실이 없었으니...
몇년 전 서너번 만났을 때- 그것도 30년 이상이 지나서야,
내 생활이 그 애들과 모든 면에서 다르다는 걸 느꼈으니까.
인터넷 사이버 장에서도 동창 명단에 등록되었던 내 이름을 싹 지워버렸을 정도.
동창들 중에서도 가톨릭 신자가 여러명 있었지만,
'신앙이나 진지한 삶의 추구...등'과는
그들의 관심사가 너무나 멀어 있어 대화의 소지가 거의 없었다.

아씨시가 고향인 성 프란치스코는
회개 생활 이후, 서로가 영영 별리의 삶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고향 친구들이 하나 둘 영적인 동료로서 그를 따랐는 데...
나는 뭘까- 동창들과 담을 쌓은 결별을 고했다니!
어쩌면 삶의 패턴이 그 시대와는 사뭇 다르다는- 수도회와 신앙을
통한 몇몇 은인들과의 만남도 벅찬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자위도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고교 동창들과을 생각하면,
나와의 삶과 얼마나 거리가 먼지...
그래도 어쩌다 스치는 소문을 듣노라면
그 애들 모습이 영영 사라지진 않았다는 걸 느낀다.
마치 깨꼬 어린 시절의 동무들과 고향 산천 하나하나가
그리움으로 떠오르 듯이 말이다.

"승룡아, 한번 이곳 성거산엘 다녀가렴"하는 초대의 말로
우리는 긴 전화 통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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