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오늘 주님께서는 헤로데의 협박을 받습니다.
자기의 영지에서 떠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 협박에 꿈쩍 않으시겠다는 뜻으로
<내 길>을 계속 가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주님의 <내 길>은 어떤 길일까요?
나의 <내 길>과는 어떻게 다를까요?
우선, 주님의 <내 길>은 다른 사람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길입니다.
우리가 흔히 그러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 간다고 따라 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 몰려가면 나도 따라가야 하지 않나 생각되고,
따라 가지 않으면 왠지 불안합니다.
모두 사교육이 교육을 망친다고 말은 하면서도
다른 집 아이들이 하니 내 아이만 안 시킬 수 없다고 합니다.
이럴 때 정말 <내 길>을 가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두 번째로 주님의 <내 길>은 가다가 멈추지 않는 길입니다.
누가 붙잡는다고 가던 길을 멈추지 않고 꿋꿋이 가시고,
애착 때문에 길을 못 떠나시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습니다.
전도 여행 중에 사람들이 붙잡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느님 나라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서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세 번째로 주님의 <내 길>은 누구에 의해 가던 길을 바꾸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상황에 의해, 누군가의 힘에 의해 목표한 길을 바꿉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헤로데의 어떤 압력에도 하려던 일 계속 하시겠답니다.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쳐주며,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만일 가시려던 길을 바꾸신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누구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 때문입니다.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것도 사랑 때문이고,
당신이 앞으로 가실 길도 사랑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의 <내 길>은 사실은 내 길이 아니라 하느님의 길입니다.
자기의 목적지가 아니라 아버지 하느님을 향하여 가시는 길이고,
자기 좋을 대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길은 근본적으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는 말씀이나,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없다.”는 말씀의 뜻이
바로 이 십자가의 길을 당신이 가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예언자란 어떤 존재입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그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려는 사람이지요.
그러나 사람들, 특히 권력자들은 자기들의 세상을
예언자가 앗아 가려고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예언자는 예언을 멈추지 않는 한 다 죽게 되어 있고,
그것도 권력의 심장부, 곧 예루살렘에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헤로데에게 쫓겨 그의 영지를 떠나시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쫓겨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아버지의 뜻인 십자가의 길을 사랑 때문에 스스로 가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주님의 <내 길>은 저의 <내 길>과는 전혀 다릅니다.
저는 종종 독불장군이 되어서 나의 길을 갑니다.
신념이 아니라 고집대로 <내 길>을 가고
그러다보니 사랑 없이 나 홀로 <내 길>을 갑니다.
오늘 주님의 <내 길>을 보며 사랑이 없는 저의 <내 길>을 반성합니다.
나도 내가 기댈 수 있는 내가 아닌데
지금 가고 있는 "내길"이 주님을 향한 길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오늘 주님의 <내 길>을 보며 사랑이 없는 저의 <내 길>을 반성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