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Noli me tangere :1511- 1512)
작가: 티치아노 (Tiziano Vicellio: 1486-1576)
크기: 109X 91cm :유채화
소재지: 영국 런던 국립 미술관
예수 부활에 대한 감동적인 내용 중에 요한복음 20장 11-18절에 나타나고 있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처음으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신 부활의 기록은 여러 면에서 감동적인 내용이지만 이 주제를 성 미술에서 다룬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승리자 예수의 모습을 부각시키기엔 여인이 등장하는 등 좀 매끄럽지 못한 면이 있기에 ,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이태리 우르비노 출신의 피에트로 델라 프란치스카(Pietro della Francesca :1416- 1492)가 마태오 복음을 주제로 그린 “그리스도의 부활”( Resurrezione di Cristo: 1450-1463)처럼 승리자 그리스도의 부각이 주된 관심이었다. 작가는 예외적으로 이러한 주제의 작품으로 우리에게 부활 신앙을 살아가는 크리스챤의 삶에 자세에 대해 좋은 교훈을 던지고 있다.
복음에 보면 마리아 막달레나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 무덤에 갔다가 주님의 시신이 없는 빈 무덤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천사를 통하여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되지만, 처음에는 주님이심을 알아보지 못하고 동산지기로 여겼다. 그러나 주님께서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시자, 그는 즉시 주님이심을 알아보고 너무 반가운 마음에 주님을 붙들고자 한다.
이 때 주님께서 이 작품의 주제처럼 “더 이상 나를 붙들지 말라”고 하시며 주님의 부활 소식을 세상에 전하라고 하신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그제야 그분이 부활하신 주님이심을 알아보고 제자들에게 뛰어가서 부활 사실을 전했다는 내용이다.
이 주제의 제목이 다른 작품과 달리 어떤 동작을 전하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마리아가 반가운 마음에 주님을 붙들려고 하자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로 이 내용이다.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말라.”
주님을 붙들려고 하는 막달레나의 모습은 더 없이 화려하다. 참혹한 십자가 죽음의 현장을 지킨 여인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화려하고 더 없이 세련된 옷차림을 하고 있다. 성대한 잔치에 초대받은 귀부인의 용모를 연상케 한다.
주님을 응시하는 유혹적인 표정과 함께 노란 색으로 염색된 머리 모양은 르네상스 시대 유럽에서 가장 풍요를 누리며 온갖 사치를 부리던 베네치아 여성의 머리이다.
당시 베네치아 여인들 사이에는 한동안 노란색의 머리가 유행이어서 요즘처럼 염색약이 발달되지 않던 처지에서 이 색을 만들기 위해 햇빛에 머리를 내어 놓고 일광욕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할 만큼 노랑 색깔이 유행이었다. 여기에 나타난 막달레나의 이런 화려하고 세련된 차림새는 부활의 목격 증인으로서가 아닌 루카복음 7장 47에 나타나고 있는 죄녀로서의 모습이다.
주님께서 어느 바리사이 집에서 식사하실 때, 그 동네에서 소문난 죄녀 하나가 값진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 와서 주님의 발을 자기 눈물로 씻고, 자기 머리털로 닦아드린 후 입을 맞추며 향유를 발라 드렸다는 내용이다.(루카 7, 36-50)
교회의 전승은 이 여인을 마리아 막달레나로 여기고 있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세기 오늘은 폐허가 된 막달라 도시를 발굴했을 때, 로마 군대가 주둔했던 병영터가 발견되면서 막달레나 성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추리가 생겼다.
그녀는 도시에서 뛰어나게 수려한 용모와 재치를 지닌 여인이었는데, 암담한 식민지 지역에서 겪어야 하는 궁상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 자기 용모에 어울리는 화려한 삶을 꾸리기 위해 지배국가인 로마의 고급장교와 결혼해서 비참한 처지의 동족들과 달리 갖은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총명함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 선택이 또 다른 의미의 비참함으로 이어짐을 알았기에, 심한 갈등 속에 고뇌하다가 주님을 만남으로서 새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막달레나는 교회 전승에서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돌아간 인간의 모델이며, 주님을 많이 사랑했기에 “ 많은 죄를 용서받은 ”(요한 7, 48) 그리스도 제자의 이상형으로 제시되고 있었다.
한 점 흠잡을 곳이 없이 화려하고 세련된 그녀는 아주 잘 어울리는 흰색과 붉은 색의 옷을 입고 있다. 흰색은 그의 모든 죄를 다 용서받았기에 더 없이 순결한 그 영혼의 상징이라면 붉은 옷은 아직도 육체 안에 머물고 있는 한 인간으로서 승화시키고 극복해야 할 사랑과 욕망의 상징이다.
근래 세계적으로 문제가 된 소위 “다빈치 코드”라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내용의 책에서 막달레나가 그리스도와 관계해서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퍼트렸듯이, 막달레나는 주님께 대해 욕정의 수준은 아니더라도 인간적인 수준의 사랑을 깊이 느끼며 살았기에 붉은 옷은 바로 이런 정화되어야 할 사랑을 지닌 막달레나의 현실을 표현하고 있다.
땅에 엎드린 그의 예쁜 손에는 값진 향유가 든 옥합이 들려 있는데, 이것은 자기 죄를 용서받기 위해 주님을 찾아가서 그분의 발을 씻겨드릴 때 사용했던 것이며, 그녀의 순수하면서도 열렬한 복음적 회개의 상징이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라도 과감히 포기할 수 있고, 어떤 희생이나 값진 것도 아끼지 않는 주님을 향한 그녀 사랑의 상징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실 때의 벗은 모습에 흰옷을 걸치고 계신데, 흰색은 부활의 상징이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한 생명이라는 정반대의 대조를 극명히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벗은 예수님에게 가려야 할 부분을 흰옷으로 가림으로서, 주님의 비참한 죽음과 영광스러운 부활을 조화롭게 표현하고 있다.
교회의 모든 성화는 천상의 세계와 하느님의 신성을 표현코자 했기에 나체는 용납되지 않았으나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 희랍 예술의 영향을 받아 들여 나체 표현이 도입되었다. 이런 영향으로 부활하신 주님의 몸 역시, 알맞고 균형 잡힌 몸매를 지니고 계시지만, 그분의 십자가의 고통을 상기시키기 위해 오른쪽 발등에 못 박힌 흔적이 남아있다.
주님은 왼손에 괭이를 잡고 계시는데, 이것은 막달레나가 주님을 만났을 때, 처음에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동산지기로 오인한 것을 (요한 20, 15) 상기시킨다.
주님께서 “마리아야!”하고(요한 20,16이하) 부를 때에야 그는 주님을 알아보고 반가운 마음에 주님을 붙들고자 한다. 이 작품의 제목인 “더 이상 나를 붙들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이 이 작품의 주제이며 이것을 주님께서는 몸짓으로 표현하신다.
먼저 주님께서는 땅에 엎드린 자세로 당신을 붙들고자 하는 막달레나를 피하려는 듯 약간 뒷걸음 자세로 하체를 뒤로 돌리고 계신다. 땅에 엎드린 자세의 사람을 피하고자 하는 면에서 너무 자연스럽다. 반대로 뒤로는 몸을 당기면서 앞으로는 다가가는 주님의 모습은, 주님 뒤에 있는 말라버린 나무와 어색하면서도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서 작가는 “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말라”는 주님 말씀의 의미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사랑은 지상에서 주님과 가졌던 사랑과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랑, 즉 천상적 사랑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막달레나 뿐 아니라 모든 크리스챤들이 자기 삶의 정황에서 정화시켜야 할 크리스챤적인 사랑의 태도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얻어진 신앙의 핵심인 믿음과 사랑은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비길 수 없이 고귀하고 순수한 것이어야 하며, 여기에 오르기 위한 사닥다리의 과정으로 막달레나는 주님과의 여러 인간적 사랑을 체험했으나, 이제는 그것을 극복할 때가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작가의 이런 표현은 부활 대축일 미사 전례의 제2독서의 내용을 상기시키고 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콜로새서 3, 1-2. 3)
예수님의 머리 부분에 있는 죽은 나무와 대조적으로 발 아래와 그 윗부분에 무성히 피어난 꽃들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크리스챤 신앙의 핵심인 부활의 의미, 즉 세상에서 죽어 천상에서 태어난다는 죽음과 생명, 십자가의 고통과 부활의 영광이라는 주님의 부활로 확인된 신앙의 내용을 너무도 명쾌히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신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이지만 작가는 작품을 제작할 때 당시 베네치아 사람들의 호사스러운 취향에 맞는 미학적인 부분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작가는 조각적인 형태를 중요시 하던 피렌체(Firenze) 와 반대로 회화적인 색채주의를 강조하던 베네치아(Venezia) 화풍의 대표 작가답게 명쾌한 색채 사용으로 신앙적 감동 못지않게 눈요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전통적인 종교화로 보기에는 선듯 납득이 가지 않는 그런 벗은 남자와 아름다운 여인이 멀리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다. 운하로 이어진 물에 의해 반사된 바다이기에 세계 어느 바다와 비길 수 없다는 아름다운 색채의 푸른 바다의 배경이 세속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다.
작가가 이런 양면성을 시도하는 것은 그의 성격과 연관을 지울 수 있다. 작가는 예술가로서의 탁월한 재능과 함께 인간적인 야심도 대단해서 부와 명성에 대단히 집착하는 성격이었다.
자신의 예술을 이 목표 달성의 좋은 도구로 여겨, 당시 실세였던 스페인 왕실을 사로잡아 천정부지의 권세를 떨치던 카롤로 5세와 필립피 2세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을 시작으로 교황청에도 손길을 뻗쳐 바울로 5세의 초상화도 제작하면서 천상과 지상의 권력자들과 대단한 유대를 맺어 그가 원하던 부귀와 명성을 마음껏 누렸다.(성화해설 : 6번 “교황 바울로 5세와 친척들 ” : 20번 “성모승천 ”참조)
그는 또한 피렌체의 보티첼리( Sandro Botticelli:1445-1510)와 함께 르네상스로부터 시작된 여성 누드화에도 관심을 가져 “우르비노의 비너스”을 위시해서 많은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나체화를 많이 제작해서 성속(聖俗)을 초월해서 모든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기에 이 작품 역시 종교성 못지않게 세속성의 그림자도 드리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