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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 게르니카

by 관리형제 posted Mar 1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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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게르니카(Gernica: 1937)
작 가 :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8))
크 기 : 349 cm X 775 cm :벽화
소재지 : 스페인 마드리드 소피아 왕비 미술관

피카소의 이름은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도 미술가의 대표 정도로 기억될 만큼 알려져 있으며 그는 92년간의 생애에서 거의 80년을 예술에 투신하면서 대단한 열정으로 회화, 소묘, 조각, 판화, 도자기 등 다양한 장르를 다루면서 5만 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의 예술 편력은 한 인간의 것으로 보기에는 너무 심오하고 방대하면서 전혀 다른 화풍 창출을 통해 새로운 성장으로 나아갔기에 다작 못지않게 다양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보통 초기에 질병, 추위 ,배고픔을 체험하면서 여과된 절망과 가난의 표현인 청색 시대(1901-0 1904)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고 예술가로서 입지를 굳히면서 가난과 비참함에서 해방된 장미빛 시기(1904- 1906)를 거치면서 큐비즘(Cubism)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게 되고, 일생을 가난으로 찌들린 삶을 살아야 했던 많은 작가들과는 달리 예술가로서는 드물게 백만장자가 아닌 억만장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여성 편력에 있어서도 대단한 열정을 보여 일생에 수없이 많은 여성을 상대했고, 알려진 것만도 8번이나 되는 결혼 생활을 통해 많은 자녀를 남겼으며, 1943년에는 자기 아들 보다 나이가 어린 40 연하의 여인 프랑스와즈와 결혼했다가 마지막으로는 80세에 쟈클린과 결혼하여 매일 한 점씩의 작품을 남기는 등 대단한 열정의 삶을 살았다.


그 역시 유아 세례를 받았기에 크리스챤이었고 초기에 “첫 영성체(1896 : 1919)”라는 주제로 두 편의 작품을 남기긴 했으나, 그에게 관능으로 얻을 수 있는 삶의 환희와 쾌락에 대한 집념이 대단했기에 자연히 신앙은 뒤로 제쳐지게 되었다.

그의 작품 주제는 너무도 다양한 것이지만 일관되는 것은 자기 개인 생활과 관계되며 관능으로 표현되는 삶의 생기와 기쁨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성은 죄악과 연관되는 음습한 것이 아니라 스페인의 태양처럼 밝고 건강한 것이었기에 투우사와 같은 집념으로 여기에 몰두 했다.

말년에 이르기까지 성을 주제로 한 많은 판화들을 남겨 어떤 것은 오늘 유행하는 프르노(Porno)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은 전혀 다르다. 포르노는 보는 이의 욕망을 부추기지만 성적인 (Erotic) 작품은 욕망의 긍정적 표현인데, 작가가 남긴 작품은 이런 면에서 후자에 속한다.

작가는 “바다, 목욕하는 사람, 심지어 열쇠”라는 주제를 통해 건강한 성을 표현하는 많은 작품을 남겼기에, 유명한 작가들이 성미술을 주제로 한 작품을 남긴 것과는 전혀 다른 예술 세계를 구축하다가 1951년에 처음으로 성서를 주제로 해서 큐비즘 양식으로 “십자가”라는 작품을 남겼는데, 이것은 작가의 생애 후기 작품이며, 작가 인생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는 대표작이다.

1937년 작가가 파리에서 세계에 명성이 알려진 중견 작가로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을 때 고국 스페인의 비보를 듣게 된다. 프랑코 독재 정권의 사주를 받은 독일 전투기들이 바스크 지방의 평화로운 작은 마을 게르니카(Guernica)를 공중 폭격해서 수 많은 무고한 주민들을 살해했다는 소식이었다.

나치 독일은 독재자로 등장한 프랑코( Francisco Franco)총통을 동지로 격려하는 차원에서 이 폭격에 참가했으며 더욱이 놀라운 것은 이때 사용된 무기는 독일이 처음으로 개발해서 성능을 시험해 보는 단계로 사용된 것이다. 5000명의 주민 중 거의 1500명이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었다.

개인적 즐거움에 탐닉하며 이것을 작품 주제로 삼던 그였지만 이 어처구니없는 비보를 접했을 때 그 내면에 있던 평화에의 염원, 폭력에의 증오가 일어나면서 작품을 통해 독재자들이 저지른 만행을 세계에 고발하고픈 예술가로서의 사명감을 느끼게 되었다.

마침 프랑스 정부로부터 파리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만국 박람회에 마련된 “스페인 관‘에 전시할 작품을 의뢰받은 그는 이 고발성 작품을 전시하기로 결심하고 일 개월이란 짧은 기간에 심혈을 기울여 이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


벽화는 날카로운 이질감을 주는 삼각 구도를 사용했으며 강렬한 색체를 사용했던 다른 작품과는 달리 흰색 검은색, 황토색으로 그려진 것은 이 사건의 비극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너무도 충격적인 주제를 다룬 그에게 닥치는 여러 질문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은 자신의 의도성을 표현했다. “미술은 단순히 장식을 위해 만들어지는 도구가 아니며, 어떤 때 불의한 폭력에 대항하는 공격적이며 또한 방어적인 효과적인 도구이다.”

작가의 이런 의도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보자


 

폭격으로 죽은 아이를 안은 여인이 절규를 하고 있다. 아들을 살려 달라는 절규나 아니면 차라리 아들을 죽일 양이면 대신 자기를 죽여 달라는 어머니의 피맺힌 절규이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전통적으로 성모자의 고통을 처절한 감동으로 묘사한 전통적인 피에타(Pieta)에 현대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성모님의 고통이 이 작품의 어머니를 통해 현실성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 장면은 마치 예수 성탄에 이어지는 무죄한 어린이의 순교 축일의 다음 성서를 상기케 한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예레미야 31, 15)

그 아래 머리가 큰 어떤 남자가 누워 있는데, 그는 이미 죽었기에 도움을 요청하는 이 여인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으며 여기에는 연약한 어린이와 자식을 지키려는 어머니의 속수무책의 고통만이 있을 뿐이다.


 

그 위에 힘의 상징인 소가 절규하는 여인을 망연자실의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다. 소는 스페인의 상징이며 작가가 1930년부터 반복해 그린 많은 작품의 주제이다. 이 작품에서 소는 유일하게 상처받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스페인 국민들의 고귀함을 드러내고 있다.

프랑코라는 독재자를 통해 저질러진 만행으로 결코 선량한 스페인 국민 전체를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 한 사람의 독재자로 먹칠된 민족 자존심을 스페인 국민들은 선성으로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위에 있는 전구는 현대인들이 우상시하는 과학의 야만성을 상징하며 나치 독일이 사용한 살상 무기를 나타낸다. 인간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개발된 과학의 어두운 야만성을 이 전구를 통해 고발하고 있다.

빛은 삶의 희망이요 생기의 상징이지만, 이것이 윤리의식이 상실된 방식으로 사용될 때 인간 삶을 파괴하는 살상무기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과학의 부도덕성과 허구를 고발하고 있다.

그 뒤에 창밖으로 손을 굽힌 여인의 손에 들린 등이 있다. 이것은 과학의 산물인 전구의 강렬한 빛에 가려 보이지 않으나 진리의 상징이다. 폭격 중에 나온 엄청난 파괴의 힘은 모든 등불로 상징되는 피해자들이 지닌 모든 진실을 부수어버린 듯 강렬했으나 무고한 여인의 손에 들린 등불 같은 진리는 언젠가 빛을 보게 된다는 확실하면서도 강렬한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말을 탄 사람은 한 눈은 정면을 바라보면서 다른 눈은 곁눈질을 하고 있다. 이것은 독일 공습의 야만성은 단순히 독일만의 책임은 아니지만 뒤에서 사주한 프랑코의 책임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폭격의 당사자는 나치 독일이지만 사실 그 배후에는 프랑코가 있음을 고발하는 것이다.

사실 프랑코는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요즘 정치인들도 발뺌을 위해 자주 사용하는 “금시초문”이라는 말로 일관한 것을 고발하면서 나치의 동반자로서의 프랑코의 처지를 두개의 눈으로 그리고 있다.


 

두 개의 눈알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굴리며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독재자의 희생물은 엉뚱하게도 무구한 동물에 까지 연결되어 창에 찔린 말은 입을 한껏 벌리고 고통에 절규하고 있다.

전쟁이란 인간 사이의 이익 다툼에서 생기는 것인데, 이런 것과 전혀 무관한 동물까지 고통을 주는 전쟁의 파괴력과 야만성을 고발하고 있다.


 

갑자기 닥친 거대한 폭력 앞에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다 비참하게 죽은 남자는 오른 손에 부러진 칼을 쥐고 있는데, 선량한 인간들이 당하게 되는 폭력 앞에서의 무력성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런 폭력 앞에 무력한 존재를 통해 선량한 삶을 살고픈 관람자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한다. 죽은 남자의 손에 쥐인 칼을 통해 희랍의 대서사시 일리아드 오디세이에 나오는 영웅들의 기억을 상기 시킨다.


오디세이 (Odyssey)로 표현되는 주인공은 자기가 전혀 책임이 없는 운명(Moia)의 장난으로 전쟁에 참가해서 갖은 고생을 다 하면서 인생의 여러 면을 배우게 된다는 내용인데, 폭력에 저항하다 비참하게 죽은 남자의 무력함은 언젠가 제 가치를 찾게 될 것이란 희망을 제시한다.


 

이 작품 전체에 등장하는 것은 한명의 남자와 황소 말 외에 전체가 여성과 어린이인데, 남자는 저항하다 목숨을 잃은 상태이고 여성들과 어린이들이 현재 진행형의 고통 속에 있는 데, 이것은 폭력의 추악한 잔인성을 고발하고 있다. 자기에게 아무런 방어능력이 없는 어린이와 여인들을 목표로 삼는 폭력의 실상을 보여준다.

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은 듯 절면서 걸어가는 이 여인은 전쟁의 참상은 단순한 살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상자들의 비참한 삶을 통해 끝없이 이어짐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 살상 무기의 피해를 보고 있는 많은 전상자들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맨 오른쪽 상단에 구덩이에 빠진 듯 두 손을 들고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여인의 주위에 불타는 집이 보인다. 뜨거운 불은 지옥의 상징이듯, 아무런 죄도 없는 무고한 여인이 불속에서 절규하는 모습은 전쟁은 인간이 만드는 생지옥임을 강조하고 있다.

작가는 마지막 이 부분을 통해 다음과 같은 강한 복음적 내용이 담긴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폭력을 바탕으로 하는 전쟁은 미친 짓이며 흉악한 죄악이다."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은 왕실과 교회, 군부가 절묘히 연결된 역사를 지니고 있어 수도 마드리드에 있는 왕궁과 이웃처럼 마주 보는 자리에 지어진 알무데나(Almudena) 대성당은 마치 왕궁과 쌍둥이처럼 조화를 이루는 것이 묘한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국민들에게 가장 영향을 줄 수 있는 막강한 힘을 지닌 세 집단이 복음정신대로 정당한 관계성을 가졌을 때는 이상적일 수 있지만 왕실과 군부가 결탁되어 어떤 비리에 연루될 때 교회가 해야 할 외침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거나 침묵할 때 교회는 바로 하느님 백성인 신자들에게 증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스페인 역사는 알려 주고 있다.

민란 때 마다 신자들의 손에 의해 교회가 파괴되고 성직자들이 살해되는 비극의 역사가 또한 스페인 교회사이다. 프랑코의 독재로 이어진 스페인 내란에서 5,000여명의 성직자가 신자들인 국민의 손에 살해되었다는 것은 단순한 순교로 보기 이전에 많은 생각할 면을 주고 있다.

앞에서 제시한 대로 작가는 크리스챤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관능을 바탕으로 한 현세에 탐닉하는 삶을 살았으나 교회가 외쳐할 상황에서 조용한 침묵을 보일 때 분연히 일어나서 교회가 해야 할 기억을 일깨우며 대신했다.


다음에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만 그는 한국 전쟁 소식을 듣고 남의 땅에 와서 자기들의 전쟁을 벌린 미국과 러시아라는 두 폭력 집단의 야만성을 고발하는 “한국 전쟁과 대학살(1951)”이라는 작품을 남겼으며, 이것을 통해 우리의 6.25 동란이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면에서 그는 우리의 좋은 은인도 된다.

크리스챤들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폭력을 부정하면서 폭력에 대한 해결책으로 무저항주의를 주장하는데, 현실적으로 이것은 폭력을 고발하고자 하는 사람에겐 큰 갈등을 주는 것이지만 이것은 성서의 주요 내용이기에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에게 이렇게 말한다. 악인들에게 맞서지 마라.”(마태오 5, 30)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엘리트들로서 할 수 있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폭력을 거부하고 고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그는 프랑코의 폭력에 대항해서 총을 들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폭력을 경고했으며 이것은 어떤 폭력 반대의 종교 집회나 정치 협상 보다 큰 성과를 거두었다.

작가의 생애로 보나 작품의 주제로 보나 이것을 성미술로 보기에는 뭣한 면이 있으나 너무도 복음적 진실을 알림이 필요한 상황에서 전달했다는 면에선 성미술로서 대단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공의회 문헌은 과거처럼 세례 여부에 따라 크리스챤과 비크리스챤을 구분하지 않고 새로운 구분 즉 “실천적 무신론자”와 “익명의 크리스챤 ”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시대성으로 공감할 수 있는 구분이다.

크리스챤이라고 떠들면서 외적인 교회행사에는 얼굴을 내밀며 열심한 체 하면서 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그런 삶을 살아가는 집단은, 전자에 속하고, 크리스챤임을 부정하면서도 어떤 때 크리스챤들의 위선성을 비판하면서도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지성소인 양심의 결단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후자에 속하며 이런 면에서 작가는 당대에 꼭 필요한 예언적 고발을 했던 익명의 크리스챤이었다.

그는 하느님이 주신 선물인 관능과 양심 사이를 넘나들며 하느님이 주신 재능을 사용하여 인간으로서 해야 할 양심을 담대히 표현했다는 면에서 익명의 크리스챤이며 그의 작품 전체가 인간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는 면에서 대단한 예술가로 자리매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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