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
크기 125cm X 101cm :켄버스 유채
소재지 :이태리 로마 보르게세(Galleria Borghese) 미술관
이 작품은 작가의 마지막 작품으로 추정되는 것이며 작가의 천재성과 심원한 작품성의 의미를 극명하게 표현하는 면에서 작가 후기의 대표작이며 여러 면에서 작가의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이 집약된 작품이라 볼 수 있다
목숨을 건 대결에서 상대의 목을 잘라 들고 있는 승리자의 모습이면서도 승리자가 짖고 있는 미묘한 표정 때문에 약간 음산한 느낌이 드는 이 작품의 내용은 다음 성서에서 따온 것이다
“다윗은 사울에게 갔다가 다시 베들레헴에 돌아 와서 아버지의 양떼를 치고 있었다. 그가 형들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 골리앗이라고 하는 갓 출신 블레셋 장수가 대열에서 나와 전과 같은 말로 싸움을 걸어왔다 .............. 그러나 다윗은 블레셋 장수에게 이렇듯 응수했다. 네가 칼을 차고 창과 표창을 잡고 나왔다만 , 나는 만군의 야훼 하느님의 이름을 믿고 나왔다. ...... 오늘 야훼께서 너를 내 손아귀에 넣어 주셨다. 나야 말로 네놈을 쳐서 목을 떨어뜨리고 네 시체와 블레셋 전군의 시체를 하늘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주리라( 1 사무엘 17, 15- 16: 23. 45- 46)”.
작가가 예술에의 열정 때문에 빈털털이로 로마에 와서 당시 실세였던 델 몬테 추기경의 후광을 업고 작품 활동을 하면서 그의 작품이 로마 상류사회에 대단한 인기를 얻음으로서 그는 부와 명예를 양손에 쥐고 있는 처지가 되었다.
반종교개혁으로 교회 이미지 쇄신을 위해 제작되는 제단화나 교회의 성화 같은 종교화로부터 귀족들의 눈을 즐겁게 만들기 위해 제작된 풍속화는 선풍 같은 인기를 끌어 유럽 최고의 화가가 되었으나 그의 괴벽은 갈수록 더 심해졌다.
그의 출생 배경은 사회적으로 상당히 고귀하고 신앙심 역시 대단한 집안이었으나 그는 마치 이런 고귀함을 지키는 것이 삶의 거추장스러움으로 여겨 애써 그의 출신 배경의 고귀함을 지우려는 듯 진흙탕을 뒹굴듯 살았고 이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을 계속 만들게 된다.
당시 명문으로 평가되던 로마대학을 졸업하고 서품된 예수회원으로서 경건한 수도자로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인 그의 동생 죠반니 신부가 형을 찾아 왔을 때 자기는 동생도 없고 , 또 그 동생이 찾는 형이 아니란 말로 만나길 거절하자 동생은 황당하고 기막힌 처지에서도 형의 안녕을 빌며 기도를 약속하고 떠나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후부터 그의 일상생활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괴팍하고 격정을 조절할 줄 모르는 성격에다 정상적이며 평범한 사람들 보다 뒷골목의 인생들과 어울리길 더 좋아하다 보니 그의 삶은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어떤 때는 그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도 속수무책이 될 만한 낭패스런 꼴을 만든것이 한 두번이 아니어서 감방 드나들기를 식은 죽먹듯 했고, 그의 수사기록을 보면 고발당한 것이 15번 정도 되고 감옥에 들어간 것이 7번이나 되었다.
카라바죠의 광폭성은 갈수록 도를 더하면서 자기 작품의 모델로 등장한 어떤 여자와의 치정관계 때문에 고소를 당하게 되고 이것을 피하기 위해 제노바로 도망을 쳤다.
로마에서 범법자로 도망친 범인이지만 거기서도 대단한 환대를 받으며 그의 예술을 사랑하는 귀족의 보호 속에 작품 활동을 계속하게 되었다. 이처럼 그는 이상한 행동으로 끊임없이 주위를 실망시키면서도 그의 자질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부터는 열광적인 환대를 받았다.
그러나 드디어 자기 업보에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극적인 사건이 생겼다. 1606년 그는 테니스장에서 판돈 문제로 말다툼을 하다가 감정이 격해지자 결투를 신청해서 상대방을 죽이게 된다. 이 살인사건으로 화려하던 그의 로마 생활은 끝장이 나면서 도망치듯 로마를 떠나야 했다. 그의 도피행각은 정처 없이 계속되어 나폴리, 메시나, 팔레르모를 전전하면서 새로운 재기의 길을 열어줄 후원자를 찾게 된다.
이 작품은 그가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친 첫 피난처인 나폴리에서 그린 마지막 그림이다. 자신의 행업에 의해 모든 것이 박살난 처절한 심정을 그는 골리앗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이 직품에 등장하고 있는 다윗은 위의 다윗처럼 하느님의 능력에 힘입어 엄청난 악의 화신인 골리앗을 때려눕힌 승리자의 모습이 아니다.
그는 손에 쥔 적장의 목을 통해 드러나는 비참한 현실에 놓인 자신을 바라보며 경멸하고 슬퍼하는 또 다른 자기의 분신(分身)이다. 소년 다윗은 경멸에 찬 눈빛으로 스스로 추악하게 변신한 자신을 응징하듯이 멸시의 눈빛으로 그러면서도 연민의 눈빛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인물의 의미성은 다윗이 들고 있는 칼에서 찾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 칼에 새겨져 있는 이름은 사무라이들이 사용하던 일본도나 중세기에 만들어진 서양의 칼들이나 구분이 없이 대부분 그 칼을 만든 장인(匠人)이나 아니면 칼의 주인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칼에 새겨진 것은 장인이나 주인의 이름이 아니라 성 아우구스티노의 <시편35편 주해>에 있는 교만과 겸손에 대한 교훈 내용이 새겨져 있는데. ‘거만한 자의 발이 나를 짓밟지 말게 하시고 악인의 손이 나를 내치지 못하게 하소서’.
거만한 자의 발이 자기를 짓밟지 말게 하소서라는 간원을 바치며 겸손의 길을 걸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작가적 자질을 인정받으면서 얻게 되는 명성에 도취되어 안하무인의 교만의 길을 걷다 회복될 수 없는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진 자기를 고발하고 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듯이 겸손으로 교만을 이겨야 한다”는 교훈을 주면서 이것을 지키지 못했을 때의 결과의 무서움을 제시하면서 경각심을 주고 있다.
앞에서 본 <탈혼에 빠진 성 프란치스코>에서 작가는 당시 가톨릭 교회의 개혁 의지를 반영한 반 종교개혁에 찬동하여 작품에 대단히 호교적인 성격을 표현했으나 여기에서는 다르다. 산전수전을 다 겪고 살인이라는 돌이키기 어려운 실패를 하면서 그의 인생관은 더 심원해져서 악과 선, 성과 속에 있어 그는 더 깊은 이해를 하게 된다.
여기 골리앗의 목을 들고 있는 다윗은 의기양양한 승리자의 모습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착잡하고 기묘한 표정으로 서 있다. 그는 패배를 모르는 맹장으로서 어이없이 한 소년인 목동에게 목이 잘린 채 비참해진 자신의 모습을 연민의 모습으로 바라보는 다윗의 모습에서 죄인이 죽기를 원치 않고 회개하여 다시 살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민의 표정으로 골리앗의 목을 들고 있는 다윗의 오른편에서 쏟아지는 빛은 다윗의 심장 부분을 선명히 비추면서 자기의 악행 때문에 인생을 망친 골리앗의 얼굴도 비추고 있다.
여기에서 작가는 믿음과 선행으로 구원될 수 있다는 교회의 구원관을 뛰어 넘어, 구원은 다윗 뿐 아니라 골리앗에게도 비추는 빛처럼 하느님 은총의 선물이며 모든 사람이 다 구원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 자비의 표현임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하느님의 자비를 교회의 가르침 보다 더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작가 개인의 주관적 체험이 당시 교회가 요구하던 선행이 있어야 구원된다는 울타리를 헐어버리면서 만민 구원에의 큰 희망의 소식을 선포하게 된다.
제목 :골리앗의 목을 벤 다윗(1606)
크기 90.5 X 116 cm : 목판에 유화
소재지: 오지리 비엔나 국립 미술관
작가는<골리앗의 머리를 벤 다윗>이라는 주제로 이 작품을 그리기 전 이 주제로 다른 두 점의 작품을 남긴바 있는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다윗은 골리앗의 벤 목을 손에 든 승리자의 모습으로서 ,흔히 이런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승리자와 패배자의 이분법으로 구분된 모습이다.
이 작품을 제작할 때만 해도 그는 자신의 걷잡을 수 없는 내면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았기에 어느 정도 사회적인 외면 치례는 할 수 있는 처지에서 그린 것이며 ,여기에서 적장의 목을 베어 손에 들고 자신만만한 모습에서 자기의 천재성에 의해 여러 작가들을 누르고 유럽 최고의 작가로 부상한 자신의 승리감을 표현하고 있다.
마치 베토벤이 자기 생애에 가장 인기 있던 시대, 자기 명성과 인기에 도취되었던 시대, 자신의 이상적 인물이 당시 유럽을 석권하던 나폴레옹 보나팔트(Napoleon Bonaparte: 1769 1821)였고 이것을 모티브로 해서 유명한 교향곡 3번 영웅(Eorica)를 만든 것과 같다.
여기에서의 다윗은 자기 능력과 성공에 한껏 도취된 작가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작가의 위대함은 속됨 안에 들어있는 성스러움을 찾아내고, 성스럽게 여겨지는 것 들안에 교묘한 모습으로 위장되어 있는 속됨을 고발한 것이다.
작가가 활동하던 시대는 그의 작품의 특성인 테네브리즘 처럼 삶의 모든 것이 이분법적인 사고에 의해 지배되던 시대였다. 귀족과 평민 , 부자와 가난한 사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이 극명히 구분되던 시대였으나 작가는 이것을 뛰어넘어 성과 속, 악과 선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삶 안에 공존하는 것임을 제시하면서 교회가 만든 교리의 울타리안에 감금되어 있기에는 너무도 큰 자비로운 하느님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세상의 통념적 사고 , 즉 선인과 악인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면서 선한 사람은 승리하고 악인은 망하고 만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으며 앞의 작품에 비겨 초보적 단계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다윗과의 대결에 의해 머리가 잘린 비참한 패배자는 바로 카라바죠 자신이다. 작가는 기상천외의 착상으로 작품을 구상했는데, 다윗은 자기의 젊은 시대의 모습에서 골리앗은 살인죄를 짓고 쫒기는 현재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즉 다윗과 골리앗은 바로 작가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라는 기막힌 내용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 중 간혹 자기의 얼굴을 작품에 그리는 예가 있었다. 예를 들어 성화해설 26번으로 소개된 <최후심판>에서 미켈란젤로는 가죽을 찟기며 순교한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의 가죽에 자기 얼굴을 그렸고, 25번으로 소개된 엘 끄레코의 < 오르가즈 백작의 매장>에서 백작의 장례식에 모인 조문객 속에 자기 얼굴과 자기 아들의 얼굴을 그린 예가 있다.
이처럼 승리자와 패배자라는 극단의 상반된 모습을 자기 모습을 통해 투영한 것은 그의 대단한 착상이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이 착상의 동기는 그의 삶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작품에 대해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의 생활은 안정되기 시작했으나 그의 내면의 삶은 깊은 데서부터 붕괴되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이것이 작품에서 까지 나타나게 되었는데, 로마 시민들이 경악을 할 사건을 만들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투철한 영성을 실천하는 개혁 가르멜(Discalced Calmerites) 수도회가 사목하는 로마의 산타 마리아 스칼라 (Santa Maria Scala) 성당 제단화로 “성모님의 죽음과 영면(mortem sive transitum)” 내용의 작품을 부탁받아 완성했을 때 주문자였던 가르멜 수도자들과 관람자들은 경악을 하고 즉시 그 작품을 성당에서 철거토록 했다.
이유인즉 가르멜 회원들이 그토록 공경하는 성모님의 모델로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여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 제작 얼마 전 로마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고급 창부가 있었는데, 무슨 사유인지 이 여자가 깊지도 않은 티베르 강에 익사체로 발견 되었는데다, 공교롭게도 그 여자는 당시 임신 중이어서 대단한 구설수에 오르고 있었는데, 작가는 바로 물에서 건져낸 이 여자를 모델로 성모님을 그렸으니 경악할 만하다.
이 작품은 즉시 성당에서 철거되었으나, 작품의 예술성에 감탄한 루벤스(Rubens)의 소개에 의해 어떤 귀족에게 넘어갔다가 지금은 파리 루브르(Louvre) 미술관 에 전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 작가로서의 명성은 막바지에 떨어지게 되었으며, 그의 천재성을 이해하는 소수의 귀족이나 성직자외의 일반인들에게 그는 이해하기 어려운 기피 인물로 부각되었다.
작가는 목을 잘려 다윗의 손에 들려 있는 골리앗의 모습에 하느님의 뜻을 읽지 못하고 교만에 빠져 흥청대며 살다 비참한 모습으로 인생을 맞게 된 작가 자신을 고발하고 있다.
2번의 작품처럼 권선징악의 교훈을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면 작가의 작품은 별것이 아니지만 이것을 뛰어넘음으로 작가의 천재성이 드러나고 있다. 작가는 인생을 어느 사회에서나 고정관념으로 정착되어 있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사고의 틀 안에서만 보지 않고 악인 안에 도사린 선의 모습을 찾아내어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자신을 향한 깊은 내면의 성찰을 하는 사람에게는 우리 모두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두 개의 모습 , 즉 다윗과 골리앗, 선과 악, 광명과 암흑의 이중성을 보게 되며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우리에게 어느 한 부분을 감추며 살아오는 데 익숙한 우리 자신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만든다.
독자들은 목이 잘린 비참한 모습의 골리앗에게서 인간 안에 있는 악인의 어두움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성스러움을 발견하게 한다. 작가는 성(聖)안에 잠복해 있는 위선을 고발하는 한편 자기처럼 진흙탕을 뒹굴며 사는 변두리 인생들 안에 있는 선과 아름다움을 제시하면서 그의 개인체험에서 영근 구원관을 전하고 있다.
구원은 교회가 요구하는 고백성사나 참회나 선행을 통해 오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을 너무 사랑하시어 누구도 구원에서 제외되는 것을 보지 못하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느님이 주시는 무상(無償) 은혜임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대부분 작품은 성(聖)의 의미성을 제시하는 종교화였지만 실재 삶에서는 언제나 속(俗)된 것에 찌들려서 그것을 즐겼으나 그는 이 찌들린 속(俗)의 세계에서 성을 찾아 내어 작품화 시킴으로서 어느 종교화가도 줄 수 없었던 교훈과 감동을 주고 있다.
동양적인 표현에서 보면 그는 진흙뻘 수렁에서 연꽃을 피우는 원예사와 같았다. 깨끗한 연꽃을 피울 수 있는 자양분을 주기 위해 그는 속세의 땀내 나고 더러운 끈끈함을 즐겼으며 , 보통 사람으로는 어려운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편력이 다른 작가들이 흉내 낼 수도 없는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의 작품은 또 다른 형태의 단테의 신곡을 표현하고 있다. 단테는 로마의 시인 비르질리우스의 안내로 지옥과 연옥을 방문하고 마지막으로 베아트리체의 안내로 천국에 이르게 되는데, 비르질리우스는 이성과 도덕성의 상징이고 베아트리체는 사랑과 신앙의 상징이다. 그는 사랑과 신앙의 도움으로 천국에 이르며 성 프란치스코, 도미니코, 베르나르도를 만나면서 큰 위안을 얻게 된다.
그런데 작가는 거꾸로 천국에서 시작해서 연옥을 거쳐 지옥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이 지옥은 구원받을 수 없는 절망의 공간으로서 지옥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만을 믿고 매달리는 그런 공간이다.
다윗이나 골리앗이나 다 하느님의 자비가 필요한 죄인이며, 하느님의 큰 사랑은 극악무도한 인생 여정을 살다가 이 그림에 나타나고 있는 골리앗의 꼴이 된 작가도 당신 품에 안으신다는 크리스챤 신앙이 주는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미술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획을 그었기에 지난 세기 그의 작품을 연구했던 전문가인 로베르토 롱기(Roberto Longhi)는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찬사를 남겼다.
<카라바죠가 없었더라면 리베라(Ribera)도, 베르메르(Vermer)도, 렘브란트(Rembrant)도, 들라끌로와(Delacroix )도, 쿠르베(Courbet )도, 마네 (Manet)의 화풍이 탄생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 작품 앞에 서면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하는 참회 시편이 긴 여운을 남기며 우리에게 들려온다.
“깊은 구렁속에서 주께 부르짖사오니 주여 내 소리를 들으소서.
내 비는 소리를 귀여겨 들으소서 .
주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여 감당할자 누구오리까?( 시편 129, 1-3)”
011- 9058- 5691 이요한 신부
두 권 다 수준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