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7년에 건립된 독일 시토회의 마울브론(Maulbronn) 수도원은 알프스 북부 지역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중세 수도원인데, 건축적인 가치로 인해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재되어있으나, 이것 못지않게 역사 안에서 수도자들이 지녀야 할 빛과 소금의 역할이라는 건강한 존재성을 증거했다는 면에서도 자랑스러운 곳이다.
베네딕도회 개혁 세력이던 클류니(Cluny) 수도원이 부(富)의 축적으로 생긴 수도자들의 부패로 생기를 잃게 되자, 새로운 생기를 회복하기 위해 시작된 시토회는 베네딕도 영성의 기본인 철저한 기도와 노동, 그리고 수도생활의 근본적인 부패요인이 되던 한가함과 부요함을 멀리하기 위해 어떤 애긍이나 기부도 단호히 거부했다.
오직 땀 흘리는 노동에 의한 철저한 자급자족과 기도 후 여분의 시간을 이웃사랑을 위한 노동에 재투자함으로서 봉쇄와 침묵 안에서 이웃 사랑 실천에도 대단한 역할을 했다.
봉쇄 안에서, 우유, 치즈, 맥주 등을 생산해서 사회에 공급했으며, 오늘도 시토 수도원에서 만든 식품은 품질에 있어 항상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다.
시토회가 시작될 당시의 교회는 희망이 보이지 않게 부패한 상태였다.
서양 속담에 “생선이 썩을 때 머리 부터 썩는다.”는 말이 있는데, 당시 교회의 실상에 정곡을 찌른 말이었다.
이때 부패로 넘어질 이런 교회를 지탱시킨 힘이 바로 수도자들에서 나왔으며 이 수도원이 좋은 표본이 되었다.
한때 이 수도원에는 300여명의 수도승들이 어떤 정치적인 술수나 사회적인 변화에 흔들림이 없이 “기도하고 일하라”는 삶에 철저하면서, 땅이 꺼져도 곁눈질 않고 하느님의 뜻만 따른다는 것이 이 수도자들의 확고한 신념이요 , 현실이었다.
종교개혁 이후 이 수도원은 “군주가 믿는 종교에 따라 백성들은 자기 종교를 선택해야 한다.(Cujus regio, cujus religio)"는 당시 유럽 사회의 정서에 따라 가톨릭과 개신교를 넘나들다가 결국 개신교의 몫이 되어 신학교로 변신하게 된다.
이 신학교는 저명한 목회자 뿐 아니라 천문학자 케플러(J. Kepler: 1571- 1630) 같은 쟁쟁한 인물들을 배출하면서 더 유명해지다가 현대에 와서 헬만 헷세의 출현으로 인간 정신의 진수인 진리와 자유를 찾는 사람들에게 감동적이며 교훈적인 성지가 되고 있다.
중년이 넘는 사람들에게 젊은 시절 한때 마음을 사로잡은 우상이었던 헤르만 헷세(Hermam Hesse: 1877년 - 1962년)는 독일 남부, 낭만을 추구하던 시인들의 고장 슈바벤에서 개신교 목사이던 요하네스 헷세와 마리 군데르트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철저한 개신교 전통의 가정이면서도 대단한 자유로움을 타고 났다. 어머니는 전 남편과 사별 후 아버지의 제자로 있던 요하네스 헤세와 32세 때에 재혼하였는데, 이때 그녀는 다섯 살 연상이었다.
당시 독일 사회 정서에서 총각이, 스승의 딸이었던 연상의 여인과 결혼한다는 것은 그리 평범한 것이 아니었으나, 그들은 사랑의 진실한 가치를 알았기에 스스럼없이 결혼했다.
이런 부모에게서 태어난 헷세 역시 부모의 유전자를 아낌없이 발휘해서 자유의 삶이 바로 진리의 삶임을 뼛속 깊이 체험하며 성장했다.
헷세가 14세 때, 부모로부터 받은 크리스챤 신앙에 투신하기 위해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처음 그는 여느 학생처럼 진리를 찾기 위한 도구로서의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다고 믿었던 희랍어와 라틴어를 공부하면서 소년다운 흥미와 함께 학교생활의 재미도 느끼게 된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후 이 총명한 소년에게 신학교의 어둡고 답답한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유로 표현되어야 할 진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제도 교회 교직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의 벽이었다.
그의 꿈은 진리의 넓은 바다를 활보하고 싶은데, 신학교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만든 규칙과 전통으로 사람을 묶는 곳임을 알게 되자, 무모하리 만큼 용감하게 이 신학교를 탈출했다.
그는 꿈이란 단어의 참뜻을 너무도 정확히 잘 알고 실천했다. 꿈이란 단어에는 두 가지 상반된 의미가 있다. 허황한 꿈, 망상 수준의 깨트려야 할 꿈이 있는가 하면 이상에 도전하기 위한 디딤돌로서의 꿈이 있는데, 작가의 신학교 탈출은 바로 깨트려야 할 꿈에서 탈출해서 진리가 주는 자유로운 꿈의 실현으로서의 여정으로 볼 수 있다.
헷세는 이 짧은 신학교 생활의 경험으로 “수레바퀴 아래서” 라는 자서전 성격의 작품을 남겼다.
그는 여기에서 인간은 어떤 처지에서도 근거 없는 권위나 힘에 짓눌려 수레바퀴 밑의 달팽이처럼 찌그러진 인생을 살아선 안 되고, 반대로 수레를 끌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운명을 짊어진 수래 바퀴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대단한 폭탄선언을 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8:32)
사도 요한의 표현처럼 종교는 인간을 가장 자유롭게 해야 할 에너지인데, 반대로 순종의 이름으로 ,진리에 충실이란 이름으로 인간을 억압하여 성장을 방해하는 족쇄가 될 수 있음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종교가 제도화 될수록 더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게 되는데 작가는 바로 어린 나이지만 순수하고 예리한 감각으로 이것의 허구성을 발견하고 과감히 도전했다.
헷세의 작품들은 이 땅의 5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방황하던 젊은 시절에 삶의 정확한 이정표 제시와 함께 생기를 준 작품이다.
데미안에 나오는 너무도 유명한 대목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며 알은 세계이다
이처럼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나의 학창 시절, 주문처럼 이글을 되뇌며, 격정과 혼돈의 심연에 빠지기 쉬운 자신을 추스렸던 아름다운 기억이 있다.
프란치스코 출판사에서 반갑게도 헷세의 성 프란치스코를 출판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은 프란치스칸 어떤 조직에 몸담아 있던 그렇지 않던 소위 프란치스코를 사랑하고 닮고자 하는 사람들인데, 이 책의 출판은 참으로 반가운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프란치스코를 바로 알고 따르기로 노력했으나 어떤 것이나 순수한 것은 또한 오염과 변질되기 쉽다는 부정적인 면이 있듯, 어떤 이들은 인조 프란치스코에 맛들이면서 박제품 프란치스코를 만들어 살아가는 안타까운 모습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 일수록 프란치스코에 대한 이해는 추상적인 이념 표현에 도취 수준의 중독이 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헷세가 우리에게 안겨준 프란치스코의 생애는 오늘 우리에게 꼭 필요한 프란치스칸 삶의 업그레이드의 지혜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런 관점에서 이 땅의 모든 프란치스칸 가족들에게 꼭 필요한 비타민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며, 프란치스코를 전하고픈 형제 자매들에게는 매력 있는 안내서가 될 것이다.
한 개인의 경험이 보편성을 띨수는 없지만 일천한 인간으로서 본인의 수도여정에서 헬만 헷세는 위대한 스승이며 나를 복음의 길로 인도하는데 언제나 앞을 밝혀준 좋은 등불이 되고 있다.
나의 수도 성소 체험은 철저히 작가의 작품 "나르시스와 골드문트"와 관계되어 있다
이 작품에는 헷세가 몸담았던 마룬브론 수도원을 배경으로 엄격한 수련을 통해 삶 전체로 그리스도를 살아가는 수도자의 모델인 나르치스와, 육감적인 생활 안에서 삶을 즐기는 자연인 골드문트 사이의 우정이 그려져 있는데, 비평가들 사이에서 헷세의 작품 중에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수도원에 입회하기 전, 나도 여느 젊은이처럼 맑고 고귀한 삶을 살아야 겠다는 열망을 느끼는 과정에서 읽은 이 책은 너무도 감미롭고 충격적인 기억이었기에, 내 인생을 나르시스처럼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면서 수도원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이런 면에서 헤르만 헷세는 내 수도생활의 큰 은인이시다.
낭만적인 기질의 헷세 작품의 특징은 인간의 감성에 의존하는 것이다. 헷세의 감성은 소녀 취향적인 미숙한 감정이 아니라 머리나 아닌 마음으로, 지식이 아닌 느낌으로 삶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자신이 그리는 이상적 인간상을 성 프란치스코를 통해 투사하고 있다. 하느님 외에는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삶, 하늘을 나는 새처럼 거침없는 삶, 이것이 헷세가 그리던 이상적인 삶이었고, 성 프란치스코의 삶에서 이것을 발견했기에 저술할 수 있었다.
그의 작품에는 자연, 평화, 자유라는 복음의 기본적인 가치를 정의하며 권고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삶에 몰입해서 즐겼던 프란치스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장마에 마실 물이 없다”는 격언처럼 프란치스코에 대한 여러 책들이 있으나, 거의 제도적 교회의 사고방식이나 틀에서 저술된 것이기에 아쉬움이 있는데, 이 작품은 바로 이런 우리에게 생수를 제공하고 있다.
불교 설화에 뗏목에 대한 비유가 있다. 수행승 두 명이 길을 걷다가 강 앞에 서게 되었다. 이들은 뗏목을 엮어 강을 건넌 후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게 된다.
지혜로운 수행승은 뗏목을 버리고 허허로운 마음으로 열반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는데 비해, 어리석은 수행승은 강을 건너게 해준 뗏목이 너무 고마워 그것을 메고 걸다보니 열반의 삶에 뒤진 인생이 되고 말았다.
크리스챤 삶 역시 마찬가지이다. 교회는 우리로 하여금 복음적 삶의 진수를 알려주기 위한 학교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만년 학생으로서 이 학교에 도취되다 보면 복음이 약속한 큰 자유에 삶에 도달하지 못하고 교회라는 집단에 안주하는 앉은뱅이의 삶이 될 수 있다. 이런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헷세가 알려 주는 성 프란치스코는 미망(迷妄)의 늚에 허우대는 우리에게 등불이 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헷세의 방법론으로 복음에 접근하다 보면 교회 안에서 앉은뱅이의 삶을 살고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산뜻한 생기와 향기를 풍기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이것이 현실적으로 해야 할 프란치스칸으로서 빛과 소금의 모습일 것이다.
이 작품은 또한 프란치스칸 영성의 우뇌와 좌뇌의 조절로 영성적 균형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저울 역할을 할 수가 있다.
오랫동안 인간 삶의 질을 평가하는데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능지수(IQ)의 한계점을 보면서 오늘에는 감성지수(EQ)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는데, 영적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헷세의 작품은 철저히 인간의 감성을 통한 진리의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다.
취임 일주년을 맞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 폭발적 수준에 있다. 이런 교황 환호 현상은 그분이 신학자로서의 새로운 견해를 발표해서가 아니다.
그동안 교회가 철옹성처럼 불변의 진리로 여겨 인류에게 강요했던 피임, 이혼, 동성애 문제에 대해 인간에 대한 한없는 연민과 동정심을 지니셨던 예수님의 마음과 느낌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교황님의 이런 파격적인 행보는 어떤 조직의 책임자로서 시세에 부응할 수 있는 태도 표현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들, 그중에서 특히 자신의 약함 때문에 힘겨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변두리 인생에 대해 자비로운 아버지 어머니 하느님의 마음을 보이시는 것이다.
현대의 종교는 생각하는 데에서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것을 오늘 유럽 교회 붕괴는 알리고 있다.
성 프란치스코를 만나기 위해선 느낌으로 다가가고 시인과 같은 감수성으로 다가가야 할 것이다. 교리 문답 암기식의 프란치스칸 영성 공부는 현대에서 철지난 양복처럼 우중충하기에 과감히 폐품처리 되어야 할 것이다.
마치 헷세가 대단한 전통과 규칙으로 다듬어진 신학교 생활의 허구성을 보면서 용기 있는 탈출을 한 것처럼 친절하게도 프란치스코 출판사에선 전화 주문을 하면 택배로 보낼 배려까지 하고 있다.
얼마 전 사업 실패로 노숙자의 신세로 전전하다가 복권을 산 어떤 사람이 당선되어 인생이 바뀌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인생의 최고 정상의 삶을 겨냥하는 우리 프란치스칸이라면 이 책을 구입해서 읽는 영적 투자 정도는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출판은 “빠를수록 좋다”는 말의 실속적 의미를 절실히 느끼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