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 (1452- 1519)
리타의 성모 (The Litta Madonna)
불과 반년도 못되는 사이 우리나라에서만 100만부의 판매 실적을 올린 소설 “다빈치 코드”( The Da Vinci Code )가 소개된 이후 이 작품에서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관심이 대단해졌다.
지금 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이나 “모나리자”를 그린 명망 있는 화가 정도로만 이해되고 있었지만 실은 인류가 낳은 천재 중 손꼽을 수 있는 몇 사람 중 한 사람이며, 화가이기 이전 건축 설계사, 비행기와 잠수함의 원리를 개발한 과학자, 인체 해부 전문가에 이어 심지어 밀교(密敎) 사상까지 연구해서 자기의 작품에 가미시켰기에 다른 화가들에게서 볼 수 없는 풍부한 면이 있으며 그의 작품과 생애는 정신 분석학자들의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
1452년 사생아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예술적 천재성을 발휘해서 당시 예술의 중심지 피렌체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던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 (1436- 1488)의 문하에 제자로 들어가 20세가 되기 전에 이미 두각을 나타내면서 당시 이태리에 영향을 주고 있던 두 가문,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과 밀라노의 스포르자 가문과의 교류를 맺으며 작품 활동을 하고, 교황 알렉산더 6세의 아들로서 유럽 사회를 주름 잡던 실세인 체사르 보르지아와 관계를 가지며 전쟁광인 그에게 필요한 축성기술이나 교량 설계까지 도운다. 이런 면에서 그는 자신의 관심사나 자질을 마음껏 계발하고 작품 활동을 원활히 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아무 부담 없이 받아들인 지조 없는 예술가로도 볼 수 있다.
릿다의 성모(Madonna Litta)는 일명 “젖의 성모”라는 별명이 붙은 1490년경의 작품이며, 이때 그는 이미 예술가로서 명망을 얻어 많은 제자들을 두고 있을 때였으므로 이 작품 전체를 자기가 완성한 게 아니고 스케치를 한 후 스승의 의도에 따라 제자가 완성한 게 아닌가라는 추측도 있으나 전적으로 그의 취향을 표현하고 있다는 데에는 의심이 없다. 그의 작품 경향이 원채 종잡을 수 없이 방대하기에 이런 추측 역시 확실히 믿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가 그린 많은 성모자상은 다양한 색상과 구도를 선택했지만 항상 우아함을 잃지 않는 자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 그림 역시 전통적인 신성과 인성의 색깔인 푸른 색깔과 붉은 색깔의 조화 속에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의 복스러운 어린이로 오신 하느님의 아들을 묘사케 했다. 성모님과 예수 아기의 모습은 그가 이 그림을 그린 밀라노의 실권자 스포르자 가문의 어느 귀부인처럼 인생의 그림자가 전혀 보이지 않는 그런 모습이나 이 작품에 요약되고 있는 구성과 상징 체제 때문에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성탄의 기쁨과 우아함을 귀족 취향으로 표현하면서도 독특한 상징을 도입해 그리스도의 수난을 제시하고 있다. 성모님의 젓을 빨면서 쥐고 있는 예수님의 오른 손목 아래 방울새 한 마리가 숨어 있는 데, 이 새는 바로 수난의 상징이다. 창밖의 평화로운 풍경을 배경으로 행복한 표정으로 아들에게 젓을 먹이는 어머니, 젖을 통해 어머니의 사랑을 만끽하며 포만상태에 있는 아기 예수와 성모님 사이에 약간 어둡게 그려졌기에 자세히 보아야 확인되는 방울새는 그가 겪어야 할 장래 수난의 예시이다.
그는 신앙의 주제를 그리면서도 밀교적 요소를 많이 도입했기에 후기 작품에는 “성모 영보”에 나타나고 있는 천사에 큼직한 남근을 그려, 보는 사람을 당황하게 할 만큼 그의 작품 경향은 종잡을 수 없는데 “다빈치 코드”의 저자는 그의 이 밀교적 성격을 십분 활용함으로서 독자들이 서서이 작품속으로 빨려들게 만들었으나, 이 그림에서는 수난으로 완성되는 성탄의 신비를 간결하면서도 분명히 잘 묘사하고 있다.
이 그림은 밀라노의 말르케세 가문에서 보관하다가 1865년 러시아로 옮겨져 지금은 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쥬 (The Hermitage) 박물관에 우리에게도 너무 잘 알려진 렘브란트(Rembrandt)의 “돌아온 탕자”와 함께 진열되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