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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거름녘

by 김맛세오 posted Jan 0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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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온 누리에 평화

 

'해거름'하면 으례히 제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2가지 장관이 선명히 떠오릅니다.

 

그 하나는 오래 전 인도에서의 짧은 여정(아마도 1983년?)중에 만났던 석양이니,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모든 사람이나 동물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귀거(歸居)의 장엄한 모습입니다.

하루 종일 벌겋게 달아 있던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면서 인도를 온통 붉은 대지로 물들게 하는-

실로 그 모습은 열대 속에서 만이 느낄 수 있는 엄숙함이요 절로 "오-ㅁ"이란 탄성을 발하게 하는

장대한 영겁(永劫)의 행렬만 같았으니까요.

하늘 아래 똑같은 태양이건만,

인도에서의 '해거름'은 성거산에서 6년 동안 지내면서 매일 대했던 그것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래선지 인도하면 종교의 심성을 아니 지닐 수 없는 그런 나라라고 하나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에서 한참 남쪽으로 내려가 만난 '네겝' 사막에서의 '해거름'입니다.

사막이라고 하지만 광야(廣野)라고 해야 더 적절한 표현일 듯 싶습니다만,

모래 땅이 아닌 생물이 전혀 살 수 없는 산과 협곡으로 이루어진 곳이니까요.

그곳에서도 역시 '해거름'을 만난 시간에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던 신비로움이 저를 압도하는 거였습니다.

왜 옛 은수자들이 하느님 체험을 하기 위해 그런 광야를 찾아 들었는지 이해가 갑니다.

세례자 요한이 메뚜기와 꿀만 먹으면서 지냈던 곳이 바로 그런 광야였을 겁니다.

 

위의 두 가지 '해거름'에 대한 특이했던 경험은

벌건 황토빛 아름다움과 장엄함을 통해

태양이 그렇듯 하느님과 대면케 하는 신비함을 일깨워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떠오르는 아침해를 좋아하는 사람은 밝고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로 비록 힘든 경우일지라도 자신의

매일을 밝고 행복하게 이끌어 갈 겁니다.

그런가 하면 저녁해를 좋아하는 사람은, 은연중에 고독함이 깃들어 조용히, 그리고 매사에 천천히

자신 만의 길을 걸어가는 구도의 심성이 강한 사람일 테지요.

 

끝으로 어릴적 엄마를 만날 수 있던 '해거름'의 장면을 빼어놓을 수 없습니다.

집으로 돌아드는 마을길은 언제 보아도 푸근하고 정겨웠으니,

거기에 늘 퇴근길 '해거름녘'이면 나타나시는 엄마의 모습!

어쩌면 제 생애의 한복판으로 찾아오는 은총이련듯

저녁이면 깃드는 강야(江野)의 해거름과 함께

엄마는 바로 예시된 성모님의 따뜻한 품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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