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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2026년 10월 14일 수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학교 말씀 기도

by 고도미니코 posted Oct 1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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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
루카 11,42-46
어제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하신 예수님께서,
오늘은 ‘불행하여라’ 하고 거듭 탄식하십니다.
이는 저주가 아니라, 깊은 슬픔이 담긴 충고입니다.
사랑하는 이가 잘못된 길을 갈 때 터져 나오는 안타까움입니다.

첫째 탄식입니다.
“박하와 운향과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본디 십일조는 곡식과 가축에 대한 것이었는데,
바리사이들은 마당의 작은 향초 한 줌까지 세어 바쳤습니다.
놀라운 열심입니다. 그런데 그 열심의 방향이 어긋났습니다.
작은 규정은 자로 재듯 지키면서,
정작 율법의 심장인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비워 두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일조도 소홀히 하지 말라” 하십니다.
형식을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사랑을 담으라’는 말씀입니다.

둘째 탄식입니다.
“회당에서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한다.”
신앙이 어느새 ‘나를 높이는 수단’이 된 것입니다.
셋째,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다.”
겉은 평평한 땅 같아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지만,
그 아래는 죽음이 있습니다.
남들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곁에 있는 이들을 상하게 합니다.

그러자 율법 교사가 발끈합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물러서지 않으십니다.
“너희는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는다.”

여기에 오늘의 핵심이 있습니다.
종교가 사람에게 ‘짐’이 될 수 있습니다.
규정을 늘려 남을 무겁게 하면서,
정작 자신은 손끝 하나 거들지 않는 것 ―
이것이야말로 사랑의 반대입니다.
성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가 사목자들에게 일깨웠듯,
말씀을 가르치는 이는 먼저 그 짐을 함께 져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짐을 지워 놓고 물러서신 것이 아니라,
친히 우리 짐을 지시고 “내 멍에는 편하다” 하셨습니다.

친절·선행 주간의 눈으로 보면
친절이란 결국 ‘남의 짐에 손을 대는 것’입니다.
말로 훈수하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함께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제1독서(갈라 5장)가 그 힘의 근원을 알려 줍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친절(호의)과 선행(선의)은 우리가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살 때 저절로 맺히는 열매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
일치의 눈으로 보면
윗자리를 다투는 곳에는 하나 됨이 없습니다.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지고 자리를 내어 줄 때,
교회는 비로소 한 몸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작은 규정에 철저하면서 ‘큰 사랑’을 빠뜨리지 않는가?
나의 신앙은 어느새 ‘나를 높이는 수단’이 되지 않았는가?
나는 남에게 짐을 지우고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웃의 짐에 손을 대는 사람인가?

주님,
규정에는 철저하면서 사랑을 빠뜨리지 않게 하소서.
윗자리를 탐하지 않게 하시고,
이웃의 짐에 기꺼이 손을 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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