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하느님을 향해 돌려진 마음 1 하느님의 거처를 마련하기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Oct 12, 202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 - Up Down Comment Print

하느님을 향해 돌려진 마음 1 하느님의 거처를 마련하기

 

그리스도와의 우정은 우리 마음이 머무는 곳을 바꾸어 놓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자주 생각하고, 그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함께 소중히 여기듯이, 그리스도와 벗이 된 사람은 조금씩 그분의 시선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분과 함께 머무는 기도는 그분처럼 살아가려는 갈망을 낳고, 그 갈망은 일상의 관계 안에서 구체적인 선택이 됩니다. 우정이 깊어진다는 것은 그분에 관하여 더 많이 아는 동시에, 나의 마음이 그분의 마음을 닮아 가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여전히 다른 것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기도할 때에는 자신을 내어드리지만, 사람을 만나면 인정받고 싶고, 의견이 어긋나면 옳음을 증명하고 싶으며,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싶어집니다. 주님께 향했던 마음이 어느새 자기 자신에게 돌아와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아차리는 자리가 회개의 시작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우정은 바로 이 나뉜 마음을 주님께 가져가, 우리의 삶 전체가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내어드리는 여정입니다.

 

보나벤투라가 『생명의 나무』에서 드러내는 갈망도 이와 맞닿아 있습니다. 온 마음과 온 정신과 온 힘으로 믿고 희망하며 사랑하여, 모든 갈망의 목적이신 그리스도께 이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길 잃은 이에게 구원이 되시고, 지친 이에게 힘이 되시며, 고통받는 이에게 위로가 되시는 그분 안에서 인간의 마음은 자신이 찾던 선의 충만함을 바라봅니다. 이 갈망은 우리가 무엇을 더 소유해야 하는지를 묻기보다, 누구에게 자신을 맡길 수 있는지를 묻게 합니다.

 

프란치스코에게 마음은 한 사람의 삶이 모이는 중심입니다. 마음에는 생각과 감정만이 아니라 기억과 의지, 욕망과 결단이 함께 자리합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무엇을 소중히 여길지 정하고, 무엇을 지킬지 선택하며, 누구에게 자신을 내어줄지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하느님께 돌린다는 것은 잠시 경건한 감정에 머무는 일을 넘어, 삶의 방향을 그분께 맡기는 일입니다.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원하며 무엇을 위해 힘을 쓰는지, 그 모든 것을 하느님의 사랑 앞에서 다시 살피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보물은 입으로 소중하다고 말하는 것보다, 실제로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나곤 합니다. 누군가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마음이 몹시 흔들린다면 인정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나의 옳음이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어 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일이 계획에서 벗어날 때 사람에게까지 분노한다면, 내가 기대한 결과가 그 사람보다 앞서 있는지 물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물음은 자신을 몰아세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어디에 묶여 있는지 알아차리고, 그 자리에서 다시 자유를 얻기 위한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우리 안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머무르실 자리와 거처를 마련하라고 권고합니다. 기도는 이 초대에 응답하는 일입니다. 이미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느님께 마음을 열고, 그분의 현존이 우리의 생각과 선택에 스며들도록 자리를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그 거처는 흠잡을 데 없이 정돈된 사람에게만 허락되지 않습니다. 혼란스러운 마음, 상처받은 마음, 사랑하고 싶으면서도 사랑하기 어려워하는 마음도 주님께 내어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숨기지 않고 열어 드리는 바로 그곳에서 관계는 깊어집니다.

 

때로 우리는 마음이 가라앉고 문제가 해결된 뒤에야 기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해결되지 않은 삶을 가지고 하느님 앞에 머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풀리지 않는 원망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서운함, 부끄러운 질투와 되풀이되는 두려움까지 그분께 가져갑니다. “주님, 지금 제 마음은 이러합니다.” 이 정직한 고백 안에서 우리는 자신을 감추는 일을 멈추고,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만나 주시는 사랑에 몸을 맡깁니다.

 

이러한 기도를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우리는 기도를 오직 자신의 집중력과 의지로 이루어야 하는 과제로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찾으려는 갈망이 일어나고, 다시 사랑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며, 굳어진 판단에서 돌아서려는 작은 움직임이 시작될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성령의 이끄심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그 이끄심에 귀를 기울이는 응답입니다. 성령 안에서 우리는 성자와 결합되고, 성자를 통하여 아버지께 자신을 내어드리는 친교에 참여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이 친교의 방향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아버지의 이름과 나라와 뜻을 먼저 구할 때, 우리 마음의 중심은 조금씩 옮겨 갑니다. 나의 이름이 드러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하느님의 선이 드러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 뜻대로 되어야 안심하는 마음은 아버지의 뜻을 함께 찾는 마음으로 변화됩니다. 또한 ‘우리’의 양식과 용서를 청하는 기도는 나 혼자만의 안녕에 머물 수 없게 합니다. 아버지 앞에 선 나는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자녀이며, 그들의 필요와 아픔을 외면할 수 없는 형제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마음을 돌리는 기도는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아버지께 가까이 가면서 형제를 지속적으로 멸시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면서 다른 사람을 그의 잘못 하나에 영원히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 기도 안에서 받은 사랑은 관계 안에서 새로운 태도를 요청합니다. 그 요청 앞에서 우리는 기도가 삶을 얼마나 깊이 움직이고 있는지 알아차리게 됩니다.

 

프란치스코가 강조한 마음의 순수함도 이 관계 안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순수한 마음은 아무런 감정도 일어나지 않는 마음이나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아닙니다. 자신 안에 뒤섞인 동기를 알아차리면서도 거듭 사랑의 방향을 선택하는 마음입니다. 봉사하면서 칭찬을 바라는 마음이 드러나면 그것을 숨기지 않고 주님께 내어드리고, 충고하면서 상대를 이기고 싶은 마음을 발견하면 잠시 말을 멈추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내 뜻에 맞추려 했음을 깨달을 때, 그의 자유를 존중하는 자리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수함에는 내적 가난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물건뿐 아니라 자신의 역할과 경험, 평판과 상처까지도 소유하듯 붙들 수 있습니다. 오랜 수고가 존중받아야 한다는 마음이 다른 사람의 새로운 시도를 막기도 하고, 상처받았다는 사실이 상대를 계속 판단할 권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내적 가난은 경험이나 상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그것이 지금의 만남 전체를 지배하지 않도록 내려놓는 일입니다. 내가 겪은 일이 나의 전부가 아니며, 내가 내린 판단이 상대의 전부도 아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