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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2026년 10월 9일 금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학교 말씀 기도

by 고도미니코 posted Oct 0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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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
루카 11,15-26
‘하느님의 손가락’ ―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일찍이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요술사들조차
모세의 기적 앞에서 “이는 하느님의 손가락이다” 하고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은 같은 자리에서 ‘하느님의 영(성령)’이라 씁니다.
곧 ‘하느님의 손가락’은 ‘성령’이십니다.
어제 “아버지께서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주신다” 하셨는데,
오늘 그 성령께서 악을 몰아내고 하느님 나라를 여시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저 멀리가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와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서늘한 경고로 끝맺습니다.
더러운 영이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깨끗한데 ‘비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는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들어와 자리를 잡습니다.
무서운 진실이 여기 있습니다.
악을 몰아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자리를 ‘그리스도로 채우지’ 않으면,
더 나쁜 것이 그 빈자리를 차지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긴 방황 끝에 깨달은 것도 이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하느님으로 채워지기 전에는 쉬지 못합니다.
헛된 것을 비운 자리에 하느님을 모시지 않으면,
그 자리에 또 다른 우상이 들어섭니다.
(지혜서 14장도 바로 그 ‘우상’을 경고합니다.)

영적 열매 성월의 눈으로 보면
여기서 ‘절제’의 참뜻이 드러납니다.
절제는 ‘끊고 비우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술을 끊고, 욕심을 줄이고, 소비를 아껴도
그 빈자리를 사랑과 기도로 채우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참된 절제는 ‘더 좋은 것으로 채우는 자유’입니다.
그리고 그 채움은 우리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손가락(성령)’께서 이루십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남의 좋은 일에 ‘거짓말 한마디’를 섞고 있지 않은가?
나는 하느님의 손가락(성령)의 일하심을 알아보는가?
나는 비우기만 하고 ‘채우기’를 잊지 않는가?
내 마음의 빈자리에 무엇이 들어와 앉아 있는가?

주님,
좋은 일을 비방으로 흐리지 않게 하소서.
당신의 손가락(성령)께서 제 안의 악을 몰아내시고,
그 빈자리를 당신 사랑으로 가득 채워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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