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오늘 복음의 얘기는 세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뭘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는지 묻는 것과
이에 대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대답과
다시 그러면 이웃이 누구인지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웃에 대한 성찰을 해봤습니다.
첫째로 떠오른 것은 말장난이었습니다.
옛날에 ‘아홉 자 사람론’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사람을 보고 사람, 사람 하는데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지 사람이지!
이에 빗대면 이런 말이 되겠습니다.
사람들이 이웃을 보고 이웃, 이웃 하는데
이웃이면 다 이웃이냐 이웃이 이웃다워야지 이웃이지!
그러니까 거리상 이웃해 있다고 다 이웃이 아니라는 말이고,
이웃다워야지 이웃이라는 말인데 무엇이 이웃다운 것입니까?
그것은 가장 위급할 때 또는 가장 힘들 때 도망치지 않고,
함께 있어 주고 실제로 도와주는 사랑 실천자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의 현실을 한번 봅시다.
나에게 이웃은 어떤 사람인지?
이웃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지?
요즘 많은 경우 이웃은 경쟁자요 상처 주는 자이고,
그래서 두려움의 대상이요 피하는 자입니다.
사실 이웃일수록 이렇게 되기 십상입니다.
멀리 있으면 조금만 사랑해도 절친이 될 수 있는데
가까이 있으면 많이 사랑해도 원수되기 십상이지요.
잘해 준 것보다 상처 준 것이 먼저 기억되고 더 오래 남기 때문입니다.
사실 멀리 있는 사람은 서로 상처 주는 일이 별로 없고,
상처 주는 일을 만들지 않을 수 있는데
가까이 있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주고받지요.
우리는 장미처럼 아름답지만 가시가 있는 존재들이잖습니까?
아름답다고 만지면 가시에 찔리고,
소유하려고 꺾다가 가시에 찔리는 존재들이지요.
사실 어떤 장미도 가시를 먼저 내밀지 않습니다.
꺾으려고 만지는 사람에게만 가시를 내밀지요.
어쨌거나 이웃이 이웃이려면 꺾으려고 들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꺾였을 때 곧 상처 입었을 때 다가가 필요한 도움을 줘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웃에게 나는 도와줘야 할 때는 도망치고,
꺾으려고는 다가가는 그런 나는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