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 주님을 따름과 관련하여 세 사람 얘기가 소개되는데
제 생각에 첫 번째 사람이 제일 좋은 자세를 가진 것 같습니다.
왜냐면 다른 두 사람이 말로는 ‘주님’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것을 ‘먼저’ 한 다음 주님을 따르겠다고 한 데 비해
그는 ‘스승님’이라고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른 두 사람은 ‘먼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 다음 따르겠다고 하는데
이런 것들이 먼저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 주님 말씀입니다.
이런 두 사람에 비해 첫 번째 사람은 비록 ‘스승님’이라고 하지만
‘먼저’ 뭘 하겠다는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즉시 따르겠다는 자세인 것 같습니다.
이것이 제게는 마치 복음에 나오는 두 아들 비유에서
아버지가 포도밭에 가 일하라고 하자 예 하고 안 한 작은 아들에 비해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뉘우치고 가서 일한 큰아들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사람의 태도를 제가 좋게 보는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든지 따라가겠다는 자세를 보인 점입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그것은 매우 인격적인 따름이고,
그러므로 순종과 사랑의 따름입니다.
내가 원하는 어디를 가시면 따르겠다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이 따라가야 할 곳이고,
예수님 그분이 바로 따르고자 하는 분이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수도자들에게서도 실망스러운 모습을 많이 봅니다.
인사이동 시기가 되면 가라는 데로 가려는 자세보다
가고 싶은 곳으로 가려는 자세가 전보다 많아졌습니다.
선교를 나가겠다는 수도자들조차 파견되는 곳이 어디든 가겠다는 자세보다
내가 가고 싶은 선교지가 있고 그곳으로 가게 해달라는 자세가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오늘 첫째 사람은 자기 가고 싶은 곳과 자기 갈 곳이 따로 있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면 어디든지 괜찮다고 합니다.
이런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내가 가는 곳은 머리 기댈 곳조차 없다고 하시며
그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하시는데 그의 말을 보면 각오가 되어 있는 겁니다.
이것은 아이가 엄마 아닌 다른 갈 곳이 있지 않은 것과 같고,
연인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곳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갈 곳이 없는 가난,
주님만을 따르려는 사랑,
가난과 사랑의 주님 추종을 첫 번째 사람에게서 배우는 오늘 우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