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47-51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예수님께 데려옵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성경을 연구하며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숨은 마음’을 꿰뚫어 보십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아무도 못 본 그 은밀한 갈망을 주님께서 보셨다는 사실에,
나타나엘은 온전히 승복하여 고백합니다.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더 큰 일’을 약속하십니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는 야곱이 꿈에 본 ‘하늘까지 닿은 사다리’(창세 28장)의 성취입니다.
그 사다리를 타고 천사들이 오르내렸듯,
이제 예수님께서 친히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가 되십니다.
그분을 통하여 닫혔던 하늘이 다시 열리고,
하느님과 사람이 다시 이어집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이 이름을 전하는 세 대천사를 기립니다.
미카엘 ―‘누가 하느님 같으랴?’― 은 악을 물리치는 ‘수호자’이고,
가브리엘 ―‘하느님은 나의 힘’― 은 구원을 알린 ‘전령’이며,
라파엘 ―‘하느님께서 치유하신다’― 은 길동무가 된 ‘치유자’입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지키시고, 말씀하시고, 치유하십니다.’
천사들은 ‘하느님의 손과 발이자 목소리’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성령의 은사로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이웃을 지키고
치유할 때, 세상 속 ‘작은 천사들’이 됩니다.
성 대 바실리오를 비롯한 교부들이 가르쳤듯,
천사들은 실재하는 ‘보이지 않는 창조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미사 때마다 “천사들과 대천사들과 함께”
끊임없는 하늘의 찬미(“거룩하시도다”)에 동참합니다.
영성 주간의 눈으로 보면
대천사 축일은 영성의 본질을 일깨웁니다.
영성이란 ‘하늘이 열림’을 의식하며 사는 것입니다.
실재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하늘, 영적 싸움, 치유와 위로 ―
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고요 속에서 바라보는 것이 영성입니다.
사도 바오로도 권합니다.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콜로 3장).
대천사들은 우리의 눈을 ‘위(하늘)’로 들어 올려 줍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보이는 것 너머 ‘보이지 않는 하늘’을 의식하며 사는가?
나는 고요·성시간 속에서 ‘열린 하늘’을 우러르는가?
나는 하느님의 ‘손과 발과 목소리(작은 천사)’가 되어 주는가?
나는 땅의 것에만 매이지 않고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는가?
주님,
보이는 것 너머 열린 하늘을 바라보게 하소서.
천사들과 함께 당신을 찬미하게 하시고,
저도 이웃에게 ‘작은 천사(수호·전령·치유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