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는데
이를 듣고 난 뒤의 제자들의 상태랄까 태도는 두 가지,
곧 <알아듣지 못함>과 <묻기를 두려워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왜 알아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였을까?
그 뜻이 감추어져있어서라고 하는데 그게 무슨 뜻일까?
알아듣지 못하면 물어야 하는데 왜 묻기를 두려워할까?
사실 그렇잖아요?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인데 내가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뜻이냐고 보통 묻지 않습니까?
휴대전화를 새로 사 빨리 쓰고 싶은데 사용법을 모르고,
그래서 사용법에 대해서 들었는데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다시 묻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하고도 묻기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니 알아듣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알아듣고 싶지 않은 것이고
그래서 묻기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알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겁쟁이들에게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의 뜻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뱀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뱀을 보고도 보려고 하지 않고,
봤을지라도 짐짓 못 본 양하거나 머릿속에서 빨리 지우려고 하지요.
그런데 제자들이 묻기를 두려워한 것은 과거의 것을 생각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불행과 고통을 알고 싶지 않고 생각하기 싫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일어날 불행한 일 곧 수난을 주님께서 첫 번째에 이어 두 번째 예고해도
그것이 사실일지 알려고 들지도 않고 묻지도 않은 것인데 이전 상황을 알면
지금의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로 직전 제자들 가운데 셋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를 봤고,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아이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신 주님의 능력도 봤으며
이것을 본 군중이 놀라워하는 것을 제자들 모두 봤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본 제자들이 머지않아 그분이 참혹하게 돌아가실 거라는 것은
믿고 싶지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것인데 그것은
주님을 위해서 그런 것이라기보다 자기들을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것이 싫은 이유가 어머니를 위해서 아니라
자기가 고아가 될까 봐 그런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사실 어머니가 하느님께 가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나를 떠나는 것이 싫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말이 씨가 된다며 그런 말은 입에 꺼내지도 말라는 그런 것이 있지요.
오늘 코헬렛이 말하듯 젊음을 즐기고 기뻐해야 할 젊은 날이라면 혹 그러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그럴 나이가 아니라면 고통과 죽음을 앞에 놓고 봐야 하는데
고통과 죽음만 앞에 놓지 말고 무엇보다 하느님을 앞에 놓고
하느님과 고통과 죽음을 함께 직면하고 관상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지요.
이것을 오늘 코헬렛의 말과 함께 기억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다만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