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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시선의 회복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Sep 2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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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시선의 회복

 

저는 지난 9월 21일 오른쪽 눈의 백내장 수술을 하였습니다. 수술 후 백내장과 수정체의 혼탁 → 수술과 벗겨짐 → 빛의 회복 → 영적 시선의 회복이라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마음 안에 남아있어 여기에 복음적 의미를 조금 더 깊게 살리면, 좋은 묵상거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단순히 “잘 보게 되는 것”을 넘어 ‘회개란 무엇을 보는가가 아니라 누구의 눈으로 보는가가 달라지는 사건’이라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혼탁해진 세상의 먼지가 수정체 위에 내려앉아 우리는 오래도록 안개 낀 풍경을 진실이라 믿으며 살아왔습니다. 빛은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습니다. 빛은 늘 같은 자리에서 정직하게 우리를 비추고 있었지만, 욕망과 집착과 두려움과 편견이 켜켜이 쌓이면서 우리는 빛을 잃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라진 것은 빛이 아니라 빛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눈이었습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 내가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욕망, 인정받고 싶은 마음, 상처받지 않으려는 방어, 다른 사람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는 오래된 습관들이 조금씩 영혼의 수정체를 흐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자신이 흐리게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내가 보는 것이 전부라고 믿었고, 내가 판단한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했으며,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어쩌면 영혼의 가장 깊은 어둠은 보지 못하는 데 있지 않고, 보지 못하면서도 보고 있다고 믿는 데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회개는 새로운 것을 많이 아는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내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제가 보게 해 주십시오.” 복음 속 눈먼 이의 이 짧은 기도는 우리 모두의 기도입니다. 마침내 칼날처럼 서늘한 은총이 찾아옵니다. 은총은 언제나 부드러운 위로의 모습으로만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내가 오래 붙잡아 온 것을 내려놓게 하고, 내가 옳다고 믿었던 생각을 깨뜨리며, 내가 만들어 놓은 자아의 껍질을 벗겨냅니다.

 

백내장 수술에서 혼탁해진 수정체를 걷어내듯,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오래 쌓여 있던 욕망과 교만과 두려움의 막을 하나씩 걷어내십니다. 그 과정은 두렵습니다. 익숙했던 시선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새로운 빛이 들어옵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던 눈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그때 회개는 단순히 죄를 뉘우치는 행위를 넘어섭니다. 회개는 시선의 변화입니다. 내가 중심이 되어 바라보던 세상에서 하느님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세상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사람을 쓸모와 능력으로 바라보던 눈에서 존재 자체로 바라보는 눈으로, 경쟁자를 바라보던 눈에서 형제를 바라보는 눈으로, 소유할 대상으로 바라보던 피조물에서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는 형제자매를 바라보는 눈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눈이 열리면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같은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됩니다.

 

붕대를 풀고 처음 눈을 뜬 사람처럼 우리는 놀라게 됩니다. 늘 그 자리에 있던 길가의 들풀이 보입니다. 풀잎 끝에 매달린 작은 이슬방울이 보입니다. 무심히 지나쳤던 노인의 굽은 등이 보이고, 말없이 밥을 준비하는 사람의 손이 보이며, 웃고 있는 얼굴 뒤에 감추어진 외로움이 보입니다. 전에는 사람이 아니라 그의 역할을 보았고, 존재가 아니라 그의 능력을 보았으며, 얼굴이 아니라 나에게 유익한가 불편한가를 먼저 보았습니다. 그러나 눈이 맑아지면서 비로소 사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랑의 시작입니다. 사랑은 제대로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바라보셨던 것처럼 바라보는 것입니다. 죄인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는 한 사람을 보고, 병든 몸 너머에서 존엄한 존재를 보고, 실패한 제자 안에서 다시 시작할 가능성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에게도 이러한 눈뜸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가 나환자를 바라보던 눈이 달라졌을 때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이었던 사람이 어느 날 형제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나환자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프란치스코의 눈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복음이 시작되었습니다. 회개란 어쩌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피하던 사람에게서 형제를 발견하는 것,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것에서 선물을 발견하는 것, 고통이라고만 생각했던 자리에서 은총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마침내 모든 존재 안에서 하느님의 흔적을 알아보는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영혼의 백내장을 걷어내는 일은 단순히 더 밝은 세상을 보기 위한 일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보이지 않으면 사랑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내 곁의 형제가 보이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고, 그의 아픔이 보이지 않으면 자비로울 수 없으며, 피조물 안에 깃든 하느님의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으면 감사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는 것은 더 많이 판단하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사랑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육신의 눈을 가렸던 백태를 걷어내듯 마음을 가리고 있던 장막이 걷히면 우리는 마침내 깨닫습니다.

 

빛은 새롭게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빛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계셨고, 사랑이 있었으며, 은총이 있었습니다. 다만 내가 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은총이 우리의 눈에 손을 대어 주십니다. “보아라.” 그 순간 세상은 다시 창조됩니다. 나무가 다시 나무가 되고, 꽃이 다시 꽃이 되며, 형제가 다시 형제가 되고, 상처 입은 사람이 다시 한 사람의 소중한 존재가 됩니다. 그리고 나 자신마저도 새롭게 보입니다.

 

성공과 실패, 장점과 결점, 젊음과 늙음이라는 판단을 넘어 하느님께 사랑받고 있는 한 사람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알게 됩니다. 보는 것이 곧 사랑의 시작이며, 제대로 보는 것이 회개의 시작이고,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관상의 시작이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의 마지막 기도는 아주 단순해집니다. ‘주님, 제 눈을 열어 주십시오.’ 제가 보고 싶은 것만 보지 않게 하시고 보아야 할 것을 보게 해 주십시오.

 

사람의 허물보다 그 안에 감추어진 아픔을 보게 하시고, 실패보다 다시 시작할 가능성을 보게 하시며, 상처보다 그 상처를 품고 계시는 당신을 보게 하십시오. 저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 안에서도 형제를 보게 하시고,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 안에서도 당신의 흔적을 발견하게 하시며, 날마다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순간 속에서도 당신의 빛을 알아보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마침내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제 눈을 통하여 세상을 바라보게 해 주십시오. 그때 비로소 눈뜸은 완성될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흐릿했던 시력을 되찾는 일이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바라보던 오래된 눈이 죽고 그리스도의 시선으로 다시 태어나는 일입니다.

 

혼탁한 수정체가 걷히고 빛이 온전히 들어오듯, 내 안의 욕망과 편견과 두려움이 비워진 자리에 하느님의 빛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빛으로 형제를 바라보고, 피조물을 바라보고, 나 자신을 바라보고, 마침내 모든 것 안에 숨어 계시는 하느님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혼의 눈뜸이며, 회개의 기적이고, 관상의 시작이며, 빛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우리의 작은 부활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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