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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2026년 9월 24일 목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학교 말씀 기도

by 고도미니코 posted Sep 2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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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
루카 9,7-9
짧지만 서늘한 장면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벤 헤로데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몹시 당황’합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게 말합니다.
‘요한이 되살아났다, 엘리야가 나타났다, 옛 예언자가 살아났다.’
헤로데는 묻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이 물음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묻느냐’가 모든 것을 가릅니다.
헤로데의 물음은 ‘찔린 양심과 호기심’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복음은 덧붙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는 ‘만나 보려는 마음’만 있었지,
정작 그분께 다가가지는 않았습니다.
먼 훗날 재판정에서야 예수님을 보게 된 헤로데는,
‘기적이나 구경할까’ 기대했다가, 침묵하시는 그분을 조롱합니다.
헤로데의 ‘봄’은 늘 ‘구경꾼의 봄’이었지,
결코 ‘제자의 봄’이 아니었습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가 즐겨 짚었듯,
호기심은 사람을 예수님께 ‘가까이’ 데려가지 못합니다.
‘신기해서 보고 싶다’는 마음과
‘믿어서 만나 뵙고 따르겠다’는 마음은 전혀 다릅니다.
헤로데는 끝까지 앞의 자리에 머물렀습니다.

눈여겨볼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헤로데가 궁금해한 것은 ‘복음을 전한 제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이었습니다.
어제 파견된 제자들은 자기 능력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은 물러나고 예수님만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 악한 통치자마저 ‘예수가 누구인지’ 궁금해했습니다.
나를 내세우지 않고 그분만 드러내는 것 ―
이것이 참된 제자의 표지입니다.

바로 여기에 ‘문화 주간’을 위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아름다움도, 진리도, 복음도
‘구경거리’로 소비될 수 있습니다.
잠깐 신기해하고, 흥미로워하고, 이내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문화와 신앙은 ‘구경’이 아니라 ‘만남’입니다.
마음을 열어 다가갈 때, 그 만남이 우리를 바꾸어 놓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찬가’가 그 답을 줍니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십자가 죽음에까지 순종하시고,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드높이 올리신 분”(필리 2장)입니다.
호기심으로는 결코 볼 수 없고, 사랑으로만 뵐 수 있는 분입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구경거리(호기심)’로 대하지 않는가?
나는 ‘만나 보려고만’ 하고 다가가기를 미루지(망설이지) 않는가?
나는 나를 내세우는가, 물러나 ‘그분만’ 드러나게 하는가?
나는 아름다움과 복음을 ‘구경’이 아니라 ‘만남’으로 대하는가?

주님,
호기심으로 구경만 하지 않게 하소서.
망설임을 떨치고 믿음으로 당신께 다가가 만나 뵙게 하시고,
저를 내세우지 않고 당신만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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