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오늘 마태오를 사도로 뽑으신 데 이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하시는
주님께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을 보며 저도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나라면 마태오를 사도로 뽑았을까?
이것이 마태오 사도 축일을 지내는 오늘 제게 든 첫 번째 의문입니다?
두 번째 의문은 주님은 마태오 사도를 신중하게 뽑으신 걸까?
깊은 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뽑으신 것은 아닐까? 그것입니다.
자문자답 곧 저의 인간적인 의문에 대한 저의 신앙적인 답은
잘못 뽑으신 것도 아니고 충동적으로 뽑으신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마태오를 뽑으신 것을 인간적으로 판단한다면
길을 가다가 뽑으신 것도 잘못 뽑으신 것이고,
죄인을 뽑으신 것은 더 큰 잘못일 것입니다.
사실 유비가 제갈량을 뽑으신 것과 비교하면
주님께서도 그를 찾아가서 뽑으셨어야 하지 않냐고,
왜 지나가시다가 뽑으셨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실 때부터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에
주님의 기준 곧 신앙적인 기준으로 볼 때 잘못 뽑으신 것이 아니고,
그러니 충동적으로 뽑으신 것도 아닙니다.
마태오를 사도로 뽑으신 것은 당신의 필요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 때문이고 인류 구원을 위한 것이라는
대사회적인 선포였으며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그리고 먼저 당신을 의사에 비유하십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그러니까 ‘고객 먼저’와 같은 정신입니다.
의사나 선생의 존재 이유가 병자와 학생이고,
명의와 명사의 존재 이유가 중환자와 말썽꾸러기이듯
구원자이신 주님의 존재 이유는 죄인이요 죄인 가운데서도 최고의 죄인입니다.
요즘은 자기 돈벌이로 병자를 대하는 의사가 있기도 하지만
원래는 의사를 위해서 병자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사실 원래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의사에게 원래 그래야 한다고 높은 기대를 요구하면
왜 그래야만 하냐고 되물을 의사들이 많을 것입니다.
원래 그래야 하는 것은 사랑 때문일 경우뿐입니다.
부귀영화가 나의 목적일 경우에는 그래야 할 이유가 없고,
그를 낫게 해야겠다는 사랑이 목적일 경우에만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오와 같은 죄인인 우리는 그래서 오늘 그의 축일에
죄인인 나도 사도로 뽑힐 수 있음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동시에
감사하게 받아들이며 그 주님의 사랑에 마태오처럼 합당하게 응답해야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