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마태 9,9-13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한 사람을 보십니다.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오입니다.
세리는 로마를 위해 동족에게 세금을 걷던 사람으로,
‘민족의 배신자이자 죄인’으로 손가락질받던 이였습니다.
권력과 재산은 있었지만, 채워지지 않는 영적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께서 단 한마디를 건네십니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놀랍게도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습니다.”
흥정도, 미룸도 없었습니다.
(카라바조는 이 순간을, 어둠을 가르는 한 줄기 빛과
‘저요?’ 하는 마태오의 놀란 얼굴로 그려 냈습니다.)
이어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드십니다.
바리사이들이 못마땅해하자 말씀하십니다.
“의사는 병든 이에게 필요하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오리게네스가 즐겨 읽었듯, 이 부르심은
‘아무도 부르심 밖에 있지 않다’는 복음의 심장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이, 그래서 하느님을 더 절실히 찾는 이 ―
바로 그런 이를 주님께서 부르십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특히 눈여겨볼 것이 있습니다.
이 부르심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것입니다.
돈을 ‘세던’ 그 손이, 훗날 붓을 들어
‘마태오 복음서’를 썼습니다.
신약성경의 문을 여는 그 복음서, 이천 년 동안
온 세상이 ‘읽고’ 기도해 온 바로 그 책입니다.
세리의 장부를 적던 손이 복음을 적는 손으로 바뀐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문화 주간’ 첫 평일의 뜻이 있습니다.
문화 주간은 음악·미술·시·‘독서’로 영혼을 살찌웁니다.
그런데 그 문화의 가장 높은 열매 가운데 하나(복음서)가,
‘부름받아 회개한 한 죄인’의 손에서 나왔습니다.
참된 문화는 재능의 과시가 아니라,
주님을 만난 사랑이 넘쳐흘러 빚어지는 열매입니다.
마태오의 회개가 한 편의 복음서로 피어났듯,
우리의 작은 회개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나를 따라라” 하시는 부르심에 ‘일어나’ 응답하는가?
나는 ‘내가 앉아 있는 세관(옛 삶·집착)’을 떨치고 일어서는가?
나는 나의 부족함을 알기에 도리어 그분을 더 찾는가?
나의 회개는 어떤 ‘좋은 열매(문화·섬김·글)’로 흘러넘치는가?
주님,
“나를 따라라” 하시는 부르심에 곧바로 일어나게 하소서.
옛 자리를 떨치고 당신을 따르게 하시고,
마태오처럼 그 사랑이 좋은 열매로 넘쳐흐르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