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루카 8,4-15
아낌 주간의 마지막 날에 이 비유가 놓인 것이 뜻깊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수 풀이해 주신 몇 안 되는 비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네 가지 땅이 나오는데, 우리는 흔히 넷 가운데 하나를 고르려 합니다.
‘나는 어느 땅인가’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교부들은 오래전부터 다르게 읽었습니다.
네 가지 땅이 네 종류의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 안의 네 자리라는 것입니다.
내 안에 밟혀 굳은 길도 있고, 물기 없는 바위도 있고,
가시덤불도 있고, 더러 좋은 땅도 있습니다.
그러니 물음은 ‘나는 어느 땅인가’가 아니라
‘오늘 나는 어느 자리를 갈아엎을 것인가’입니다.
오늘 우리가 오래 머물 자리는 세 번째 땅입니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입니다.
이 대목이 유독 마음에 걸리는 까닭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나쁜 것이 하나도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악마도, 박해도, 시련도 없습니다.
다만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이 함께 자랄 뿐입니다.
셋 다 그 자체로는 죄가 아닙니다.
걱정은 성실한 사람이 지니는 것이고,
재물은 살아가는 데 필요하며,
기쁨을 누리는 것도 하느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함께 자라’ 숨을 막습니다.
여기 쓰인 그리스말은 목을 조른다는 뜻을 지닙니다.
가시덤불은 씨앗을 뽑아 버리지 않습니다.
그저 곁에서 무성해질 뿐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보면 씨앗이 숨 쉬지 못합니다.
우리 신앙이 시드는 방식이 대개 이렇습니다.
큰 배신으로 무너지는 일은 드뭅니다.
다만 너무 바쁘고, 너무 많고, 너무 즐거워서
어느새 기도할 자리가 없어져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아낌이 필요합니다.
아낌은 나쁜 것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좋은 것이 너무 많아지지 않게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땅의 설명이 아름답습니다.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
여기에는 세 개의 동사가 있습니다.
듣고, 간직하고, 인내합니다.
듣기만 하면 길바닥이고,
간직만 하고 견디지 못하면 바위입니다.
셋이 다 있어야 열매가 옵니다.
특히 ‘인내로써’라는 말이 마음에 남습니다.
씨앗이 백 배 열매가 되기까지는 한 계절이 걸립니다.
그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 보입니다.
땅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낌 주간을 매듭지으며 이 말씀이 우리를 격려합니다.
이번 주 우리가 줄인 물 한 통, 전기 한 등,
사지 않기로 한 물건 하나는 아주 작아 보입니다.
그런데 그 작은 김매기가 자리를 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무언가가 자랍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내 안의 가시덤불은 무엇으로 자라고 있는가?
나쁘지 않아서 뽑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듣고, 간직하고, 견디는가?
오늘 내가 갈아엎을 한 자리는 어디인가?
주님,
나쁘지 않기에 더 위험한 가시덤불을 알아보게 하소서.
좋은 것이 너무 많아지지 않게 하시고,
듣고 간직하며 인내로 열매 맺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