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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원 성당의 종소리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Sep 1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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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원 성당의 종소리

 

새벽달이 지리산 자락 너머로

아스라이 스러질 때,

산청 성심원의 아침은

오래된 종소리 하나로 깨어납니다.

 

손마디를 앗아간 모진 세월 끝에

남은 팔뚝에 밧줄을 칭칭 감고,

온몸의 무게를 실어 천천히 종을 울리던 사람.

손으로 잡을 수 없으니 몸으로 밧줄을 붙들었고,

몸으로도 모자라 마침내 삶 전체로 종을 울렸습니다.

 

그렇게 오십여 년, 하루 세 번 종은 울렸습니다.

새벽에는 미사시간을 알리고,

한낮에는 삼종의 시간을 알리고,

저녁에도 종소리로 기도하자고 알렸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이 고단한 세상에서의 마지막 숨을 내려놓는 날이면

종은 평소보다 낮고 느리게 울렸습니다.

한 생이 다녀갔음을 알리는 조종(弔鐘).

그 울림은 성심원 낮은 지붕들을 지나

경호강 물결 위에 내려앉고, 지리산 골짜기로 스며들어

말로 다 하지 못한 사람들의 서러움까지

오래도록 어루만졌습니다.

 

그 종소리 아래 나의 젊은 날도 있었습니다.

서른둘부터 마흔셋까지,

세상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던 시절,

나는 이곳에서 열두 해를 살았습니다.

그들과 함께 밥을 먹고, 그들과 부대끼며 울고 웃고,

떠나는 이들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며

삶이란 결국 서로의 아픔 곁에 머물러 주는 일임을

조금씩 배웠습니다.

 

부식거리를 마련하고, 후원회를 돌보고,

고장 난 곳을 고치고,

마침내 이 집의 살림을 맡아 살아가는 동안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상호 간에 필요성을 채우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상처 입은 몸으로도 웃을 수 있었던 사람들,

가진 것 없어도 나누었던 사람들,

손가락이 없어도 서로의 등을 밀어 주었던 사람들,

그들의 가난한 손에서 나는 오히려 사람의 따뜻함을 배웠고,

그들의 상처에서 인간의 존엄을 배웠으며,

그들의 침묵에서 기도가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하나둘 흩어지고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먼저 떠난 얼굴들은 이제 이름을 헤아리기조차 어렵고,

내 젊음도 어느덧 기억 저편의 풍경이 되었습니다.

사십 년 가까운 세월의 강을 건너

이제는 젊음이 아니라 지친 영혼을 쉬게 하려고

한 주간의 피정을 위해 다시 이곳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아침이 되어 그 종소리를 다시 듣습니다.

종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종은 여전히 허공을 가르며 울립니다.

뎅그렁한 번 울릴 때마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얼굴 하나가 돌아오고,

뎅그렁또 한 번 울릴 때마다 젊은 날의 내가 돌아옵니다.

 

그때는 미처 몰랐던 사랑, 그때는 너무 바빠 지나쳤던 눈빛,

그때는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하루들이

종소리의 긴 여운을 따라 하나씩 내 앞에 앉습니다.

그리고 문득 깨닫습니다.

 

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사람은 떠났어도 함께 나누었던 사랑은 남아 있고,

몸은 흙으로 돌아갔어도

서로에게 건네었던 온기는 남아 있으며,

젊음은 지나갔어도 그 시절 내 안에 심어진 삶은

아직도 어딘가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손이 없어도 온몸으로 밧줄을 당겨

세상을 깨우던 사람들처럼,

어쩌면 우리의 삶도 자신에게 없는 것을 슬퍼하는 일이 아니라

남아 있는 모든 것으로 사랑을 울리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종은 쇠로만 울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상처로 울렸고, 가난으로 울렸으며,

눈물로 울렸고, 견디어 낸 삶으로 울렸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으로 울렸습니다.

 

오늘 새벽 그 오래된 종소리가 다시 나를 깨웁니다.

기도하라고 부르는 것 같지만 어쩌면 더 깊은 곳에서는

다시 사랑하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지나온 날들을 사랑하고, 먼저 떠난 사람들을 사랑하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리고 남아 있는 나의 날들을

조금 더 가난하게,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사람 곁에 머물며 살아가라고.

 

눈을 감으면 팔뚝에 밧줄을 감고

온몸으로 종을 당기던 그 사람이 보이는 듯합니다.

그가 당긴 것은 한 가닥 밧줄이었지만,

그 밧줄 끝에는 수많은 사람의 아침과 저녁이 매달려 있었고,

기도와 죽음과 사랑이 매달려 있었으며,

어느 젊은 수도자의 열두 해 청춘도

가만히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십 년 가까운 세월을 돌아

그 종소리는 다시 늙어가는 나의 가슴에 와 닿습니다.

, 그대로여서 눈물겨운 곳.

사람은 떠나고 세월은 흘렀는데,

아직도 같은 자리에서

지난날과 오늘 사이를 이어 주며 울리는

나의 성심원, 나의 젊은 날,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아침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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