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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머링 맨(hammering Man, 2002) ; 조나탄 보로프스키 Jonathan Borofsky

by 이종한요한 posted Sep 1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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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머링 맨(hammering Man, 2002)

작가 : 조나탄 보로프스키 Jonathan Borofsky

크기 : 스틸 알루미늄, 22M, 무게 50톤

소재지 :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  




추잡스럽고 비열한 일부 정치적인 분야를 제외하고 우리나라의 현실적 위상은 대단하다. 여러 관점에서 한국의 경제적 위상은 세계 13위이나 수준 높은 인력, 사회 시스템 등을 고려하면 세계 6위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업무나 사업 관계로 서울에 근무한 적이 있는 외국인들은 자기 고국으로 돌아가면 얼마 동안 우리나라에서 누렸던 합리적이면서도 인간 친화적인 환경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광화문은 역사적 관점에서 만이 아니고 현실적인 관점에서 이 나라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기업들의 본점과 대기업들의 본점이 기라성처럼 집결된 곳이다.



또 건축법에 의해 큰 건물을 지으면 반드시 그 수준에 걸맞는 조각 작품을 남기는 관행에 의해 이 지역에는 볼만한 조각품들도 상당히 많아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쾌히 만들고 있다. 소위 말하는 고급스러움이 주는 즐거움을 한껏 볼 수 있는 그런 곳이다.



헌데 오늘 소개하는 이 작품은 크다는 것 외에 약간 괴기스럽기도 한 인상을 주는 작품이라 보는 이의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기보다 약간은 긴장하고 의아하게 만들고 있다.



이 작품은 분위기를 아름답게 만드는 시각적 차원의 작품이 아니라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 거리를 걷는 사람들에게 인생 전체를 돌아보게 만드는 철학적 교훈을 선사하고 있는 교육적 차원에서 가치 있는 작품이다.



상업적 번영과 화려함에 도취되기 쉬운 공간에 매일의 삶에서 느껴야 하는 인생의 의미성을 확인할 수 있게 만드는 작품이다.



강철과 알루미늄으로 만든 이 조형물은 높이 22m, 무게 50톤이 되는 거인으로 오른손에 망치를 든 채 구부정하게 고개를 숙이고 35초마다 오른손을 들어 천천히 망치질을 하고 있다.



실제 이 작품의 일상은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비슷한 일상 삶을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직장인이 출근하는 오전 8시에 망치질을 시작해서 퇴근 무렵인 오후 7시가 되면 망치질을 멈춘다.



한마디로 강철과 알미늄이라는 재료로 제작된 작품이지만 이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회사 직원들과 같은 생활 리듬을 공유하고 있는 또 다른 형태의 동료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작가는 무생물 중에서도 가장 경직된 철근과 알미늄으로 제작된 이 작품을 육신을 지닌 인간의 현실과 연결시킴으로서, 이 작품을 보는 사람들에게 자기 삶의 현실을 바라보게 만들고 있다.



이 작품의 작가는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조나탄 보로프스키이다. 1942년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난 그는 37세가 되던 해 뉴욕에서 연 개인전에서 높이 3.4m짜리 사람 모양 나무 조각을 내놓으면서 작품의 이름을 “노동자(Worker)”로 불렀는데, 이 첫 작품은 작가가 광화문의 작품을 만들게 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작가는 건설현장의 막노동꾼과 청소부, 구두, 수선공 등 육체 노동자는 손과 몸을 써서 작업을 한다는 이유에서 자신과 똑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노동을 모티브로 작품을 만들던 그는 이후, 작품 재료를 강철과 알루미늄으로 바꿨다. 그러면서 작품명도 해머링 맨으로 바꿔 달았다.



광화문에 서 있는 해머링 맨은 혼자가 아니며 전 세계적으로 여러 ‘형제’가 있다. 작가는 1985년 미국 텍사스를 시작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 스위스 바젤, 일본 나고야 등 세계 곳곳에 11개의 해머링 맨을 남겼는데, 광화문 작품은 일곱 번째며 아시아 국가 중에선 최초의 작품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작가가 이 작품을 만들기 전 영감을 받았던 작품 “노동자”에서 알 수 있듯이 해머링 맨이 상징하는 것은 바로 오늘도 이 거리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머링 맨이 반복적으로 망치질을 하는 모습은 쉴 새 없이 일해야 하는 자신들의 삶의 현실을 상기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예술성이란 미끼로 사람들을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게 아니라 이 작품의 움직임을 통해 바로 자기들의 몸담고 사는 삶의 의미성을 발견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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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광화문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지나가면서 이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들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너무도 진부하게 느끼는 삶이 실은 대단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 삶임을 발견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노동의 신성함이나 또 현대에 와선 인기 있는 일들은 그것이 주는 수입과도 연관시키지만 이 작품은 이런 말초신경적인 정보 제공이 아닌 노동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들의 삶의 심원한 실상을 알리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가 너무도 귀에 익어 감동도 느끼지 못하는 ‘노동의 숭고함“이란 상투적 느낌과 함께 현대인의 고독을 상징하고 있다. 이 작품은 귀에 익어 아무런 감동이나 느낌도 주지 못하는 노동의 신성함 보다 우리에게 부담과 서글픔으로 다가오는 노동의 고독을 일깨워 준다. 



오늘날 널리 퍼진 편견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의 노동은 인간의 죄의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중요한 사명임을 강조하고 있다. 성서엔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신 후 흐뭇해하시면서 아담으로 하여금 에덴 동산을 가꾸게 하셨다.(창세 2,15)



즉, 노동은 어떤 것이던 하느님 창조사업의 협조하는 것임을 알리며 노동의 긍정적 가치를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한편으로 노동은 인간을 괴롭히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임도 성서는 말하고 있다.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창세 3,19)



이 작가는 자기의 생활 체험에서 영근 작품 제작에서 성서의 내용을 너무도 정확히 전하고 있다. 노동은 인간 삶에서 필수적인 요인 중 하나이다. 노동은 인간 삶의 기본 동력을 제기할 수 있는 반면 인간 삶의 큰 고통의 요인도 될 수 있어 이 과정의 조율이 쉽지 않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세계 수준에서 상대적으로 고소득에 속한 사회이지만 이것이 곧 삶의 행복과 직결되고 있지는 않다.



많은 젊은이들이 자기가 원하는 수준에 이르고 이것을 지키기 위해선 너무나 많은 것을 투자해야 하고 인생의 많은 것을 희생하거나 접어 두어야 하니, 이 과정에서 자기 삶의 보람과 의미를 주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오늘날 이 거리를 거점삼아 살아가는 많은 젊은이들은 경제적 요소를 성공적으로 꾸리기 위해 인생에 중요한 많은 것들 결혼과 출산과 같은 것에 제동을 걸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면에서  이 거리가 인생의 부정적 판단이나 결심의 산실과 같은 곳임을 제시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런 과정을 정상으로 여기나 얼마 후 그는 자신의 삶이 더 복잡해졌다는 것 외에 나아진 것이 없다는 후회감과 허탈감도 느끼게 된다. 또한, 우리의 현실은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 젊은이들이 부러워하는 현실에 있으면서도 또 다른 부담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이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던 과거처럼 천직으로 여길 수 있는 현실이 못되며 계속 새로운 것을 찾는게 이 시대를 낙오되지 않고 살 수 있는 삶의 지혜로 등장하게 되었다. 여기에 겹쳐  오늘 우리가 공존해야 할 중요한 현실로 다가온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주는 도움 못지 않게 실질적인 불안 요인을 제공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현대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만큼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인공지능이 오늘 우리가 선망의 대상으로 여기는 교사, 회계사, 의사, 인플루언서 같은 현대 젊은이들이 인기 직종으로 여기는 직업들을 앗아갈 새로운 경쟁자가 될 수 있다는 어두운 소식도 전하고 있다.



즉, 현대인들은 항상 급변하는 현실에서 불확실성에 시달려야 한다. 이 거리를 터전을 담아 사는 이들은 한마디로 우리 사회에서는 성공한 사람의 모델이나 역시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려야 한다.



이 작품은 알미늄과 절제로 제작된 것이니 실제 색깔은 약간 회색이다. 헌데 여기에서 사용한 사진은 검은 색깔이 강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같은 수도원에 살고 있는 동료 수사가 찍은 것이며, 본인은 이 사진을 택했다.



이 사진이 작품의 재질인 철과 알미늄이라는 회색과 흑색을 전체적으로 검게 표현한 것은 시각적으로 정확성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여기를 거닐고 있는 젊은이들의 심정과 현대 직업의 고단함을 너무도 잘 표현한 작가의 의도를 너무도 잘 표현한 색갈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성서적인 삶의 지혜를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어떤 종교적 목표에서 이 작품을 제작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라는 인생 보편적 삶의 모습을 표현했지만 이것이 자연스럽게 종교적으로 승화되고 있다.



우리는 어떤 때 종교적인 의미 전달을 목표로 제작된 작품이 너무도 형식적이고 조악해서 종교적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 있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전혀 종교와 무관한 이 거리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에서 종교의 의미를 찾게 만들고 있다.



불확실성을 살아야 하는 우리에 대한 구체적인 삶의 방향을 성서는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우리들의 경제적 삶의 방향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며 지나치게 기복적인 태도에 매달리지 않는 게 대범한 신앙인의 태도이다.



오늘 이 땅에 범람하고 있는 천박한 종교들은 종교의 기복성을 지나치게 강요하는 처지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여기에서 해방되어 기품 있고 여유 있는 삶의 길을 성서에서 찾아야 한다. 신앙과 전혀 무관한 거리의 삶에서 인생을 돌아보게 만드는 이 작품 앞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성서적 관점으로 일을 통해 우리가 경험해야 하는 불안전성과 불확실성에 필요한 해답을 던질 수 있다.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께서 몸소 해 주시리라.”(시편 37,5)




또한 구약성서의 지혜 문학에 속하는 코헬렛은 멋스럽게 인생에서 당해야 하는 여러 불확실성 허구성을 제시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엉뚱한 제안도 하고 있다.




“그러니 너는 기뻐하며 빵을 먹고 기분 좋게 술을 마셔라. 하느님께서 이미 네가 하는 일을 좋아하신다. 네 옷은 항상 깨끗하고 네 머리에는 향유가 모자라지 않게 하여라. 태양 아래에서 너의 허무한 모든 날에, 하느님께서 베푸신 네 허무한 인생의 모든 날에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인생을 즐겨라. 이것이 네 인생과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너의 노고에 대한 몫이다.”(코헬 9,7-9)




크리스챤들은 보통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가는 낙관적인 인생관을 지닐 때 품위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데, 해머링 맨이 가리키는 이 불확실한 인생이란 전제를 깔지 않으면 우리의 낙관론은 환상의 말 잔치로 끝나고 만다.



이 작품은 크리스챤들에게 일이 주는 어려움과 고독 그리고 일의 결실이 주는 불확실성을 설명하면서 이런 처지에서도 낙관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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