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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협주곡 속에 여무는 가을 1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Sep 0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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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협주곡 속에 여무는 가을 1

 

어스름이 걷히지 않은 푸르스름한 방안,

열어둔 창틈으로 서늘한 공기가 밀려들 때

첼로의 묵직한 활 하나가 깊은 침묵을 가릅니다.

세상이 미처 눈뜨기 전,

아직 덜 익은 가을의 문턱에서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가 나직한 숨을 토해냅니다.

 

칼날처럼 베어내는 비탄이 아닙니다.

오래 품어 맑아진, 참으로 연한 슬픔 하나가

선율의 결을 따라 수채화처럼 은은하게 번져갑니다.

아직 채 보내지 못한 계절에 대한 미련과

성큼 다가온 찬 기운에 놀란 마음들이

저음의 현 위에서 조용히 몸을 떱니다.

 

저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탄식은

홀로 품었던 그리움의 옷자락을 붙잡고,

그리움과 또 다른 그리움이 새벽 공기 속에서 마주칩니다.

스치듯 얽히며 차오르던 애절한 고백은

마침내 어떤 말로도 닿을 수 없어

더욱 짙고 깊은 침묵이 되어 가슴 한구석에 무겁게 얹힙니다.

 

창밖으로 눈을 돌리면 덜 여문 들판,

아직 노랗게 물들지 못한 연초록의 벼들이

새벽안개 속에서 투명하게 빛나며 몸을 웅크리고 있습니다.

바람이 부드럽게 들녘을 쓸고 지나갈 때마다

밝고 시린 벼들의 여린 옷자락에서는

밤새 남몰래 맺혀 있던 이슬들이

눈물이 되어 뚝, 뚝 떨어집니다.

무언가를 속으로 채워내고 익히기 위해

저 여린 것들은 또 얼마나 시린 어둠을 견뎌냈을까.

 

오케스트라의 엷은 울림이 아득한 배경이 되어주고,

외로운 영혼처럼 홀로 솟구치는 독주의 선율.

가장 아픈 자리를 어루만지듯 흐르다

가늘고 아스라하게 허공 속으로 흩어집니다.

 

슬픔을 다 털어낸 자리에 남는 것은 서러움이 아니라

어루만져진 영혼의 서늘한 평온.

뚝뚝 떨구어낸 이슬 위로

차츰 엷은 햇살이 스며들며,

아직은 풋풋하고 쓸쓸한 가을 아침이

저 시린 들녘 끝에서부터 조용히 피어오릅니다.

 

오케스트라의 엷은 울림이

먼 산처럼 뒤로 물러앉으면

첼로의 독주는 외로운 영혼 하나가 되어

다시 홀로 솟아오릅니다.

 

가장 아픈 곳을 알고 있다는 듯,

말없이 그 자리를 오래 어루만지다가

가늘고 아스라한 한 줄기 숨이 되어

푸른 허공 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선율이 지나간 자리에는

서러움보다 평온이 남습니다.

 

슬픔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슬픔이 충분히 어루만져졌기 때문입니다.

잊어서가 아니라

이제는 그리워해도 괜찮아졌기 때문입니다.

보내지 못했던 것들을 억지로 떠나보내지 않고

가슴 한쪽에 조용히 머물도록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밤새 맺혔던 이슬을

한 방울씩 내려놓은 들녘 위로

마침내 엷은 햇살이 번져옵니다.

연초록 벼들은 아직 익지 않았습니다.

가을도 아직 완전히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 안에서는

떠남과 익어감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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