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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2026년 9월 9일 수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학교 말씀 기도

by 고도미니코 posted Sep 0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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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
루카 6,20-26
루카의 ‘행복 선언’은 마태오보다 더 직접적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가난한 사람’,
그리고 곧바로 ‘불행 선언(화 있으라)’이 뒤따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의 값을 정면으로 뒤집으십니다.
가난·굶주림·눈물·미움받음을 ‘행복’이라 하시고,
부유함·배부름·웃음·칭송을 ‘불행’이라 하십니다.

이는 가난을 미화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낮은 이들 편에 서서 돌보심’을 선언하시는 것이며,
동시에 ‘스스로 가득 찼다’ 여기는 마음을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이미 배부르고 이미 위로받았다 여기는 이는,
남을 돌아보고 돌볼 ‘빈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가 새겼듯,
하느님의 돌봄은 ‘가득 찬 높은 자리’가 아니라
‘비어 있는 낮은 자리’로 내려옵니다.

그러니 돌봄은 그분을 따라 ‘아래로’ 향합니다.
세상이 갈라 내치던 이들 ― 가난한 이, 우는 이, 미움받는 이 ―
그 낮은 자리로 내려가 그들과 함께 서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기리는 성 베드로 클라베르가
바로 이 행복 선언을 몸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가장 높은 자리에 머물 수 있었지만,
스스로 ‘가장 낮은 자리(노예들의 노예)’로 내려가
버려진 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돌보았습니다.
그 낮은 돌봄 속에서 그는 피부색의 벽을 넘어,
그들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돌봄과 일치는 이렇게,
‘내가 낮아져 함께 돌보는’ 데서 태어납니다.

돌봄 주간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 복음은 이렇게 묻습니다.
‘너의 돌봄은 어디를 향해 있는가?’
돌보기 쉬운 이, 나에게 이로운 이만 돌보고 있지는 않은가?
주님의 돌봄은 늘 ‘가장 낮은 한 사람’에게 먼저 갑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이미 배불러’ 남을 돌아볼 빈자리를 잃지 않았는가?
나는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보기만’ 하지 않는가?
나는 낮은 자리로 내려가 ‘함께 서서 돌본’ 적이 있는가?
나는 세상이 내치는 ‘가장 작은 이’를 돌보는가?

주님,
‘이미 가득 찼다’는 마음을 비우게 하소서.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가장 낮은 이를 돌보게 하시고,
그 낮은 돌봄 안에서 갈라진 이들과 하나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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