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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2026년 9월 8일 화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학교 말씀 기도

by 고도미니코 posted Sep 0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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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
마태 1,18-23
오늘 우리는 한 여자아이의 ‘탄생’을 기립니다.
교회가 생일을 기념하는 이는 셋뿐입니다.
예수님, 세례자 요한, 그리고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보잘것없는 마을의 한 아기 탄생을 왜 온 교회가 기뻐할까요?
그 탄생이 ‘하느님 돌봄의 새벽’이기 때문입니다.
이 아기를 통해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오시어
우리를 몸소 돌보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축일의 복음은
먼저 긴 ‘족보’(1,1-16)로 시작합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을 거쳐 이어지는
수많은 세대 ― 거룩한 이도, 부끄러운 이도 뒤섞인 그 긴 줄이,
결국 ‘마리아에게서 나신 예수’에게로 흘러듭니다.
성모님의 탄생은 이렇게,
하느님께서 수백 년을 ‘참고 돌보아 오신 신실함’의 열매입니다.
성 대 바실리오가 노래했듯,
이 탄생과 함께 ‘구원의 돌봄’이 조용히 시작됩니다.

이어지는 이야기의 중심에 ‘요셉’이 있습니다.
마리아가 잉태한 것을 알게 된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기에,
그리고 마리아를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에’,
‘남모르게’ 파혼하려 했습니다.
천사의 말을 듣기도 ‘전에’, 그는 이미
‘단죄와 망신’이 아니라 ‘조용히 지켜 주는 돌봄’을 택한 것입니다.
돌보는 사람은 이렇게, 남을 ‘드러내어 부끄럽게’ 하지 않고
그의 존엄을 말없이 감싸 줍니다.

그리고 천사가 그 이름의 뜻을 밝혀 줍니다.
‘임마누엘’ ―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바로 여기에 ‘돌봄’의 가장 깊은 뿌리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와 함께’ 계시어 돌보시기에,
우리도 서로 곁에 ‘함께’ 있어 주며 돌볼 수 있습니다.
돌봄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의 곁에 함께 있어 주는 것(임마누엘의 실천)’입니다.

돌봄 주간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 축일은 이렇게 우리를 부릅니다.
‘하느님이 먼저 너와 함께 계시며 돌보셨으니,
너도 요셉처럼 조용히 지켜 주고,
외로운 이 곁에 ‘함께’ 있어 주며 돌보아라.’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하느님이 나와 함께 계시며 돌보심’을 느끼는가?
나는 요셉처럼 남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감싸 주는가?
나는 외로운 이 ‘곁에 함께 있어 주는’ 돌봄을 사는가?
나는 하느님의 ‘오랜 돌봄’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음을 아는가?

주님,
‘저와 함께 계시며 돌보시는’ 당신을 느끼게 하소서.
요셉처럼 남을 부끄럽게 하지 않고 감싸는 돌봄을 주시고,
외로운 이 곁에 함께 있어 주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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