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오늘 주님께서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새 포도주는 무엇이고 새 부대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여기서 새 포도주란 바리사이의 단식 실천은 말할 것도 없고,
세례자 요한의 단식 실천과도 다른 주님의 새로운 가르침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데 새 부대란 정확히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이것은 마치 신상품이 나오면 그것을 새로운 용기에 담고
새롭게 디자인한 포장지로 싸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신상품이 나왔는데도 그걸 전에 쓰던 용기에 그대로 담고
포장지도 전에 썼던 것을 다시 그대로 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 것이 우리에게 많이 있습니다.
게으름 때문에 그럴 수 있고,
쓰던 것이 편하기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새 옷이 나오면 그것을 사 입지만 나이 먹으면 그럴 마음이 없고,
옷들이 많아도 이것저것 고르는 것이 귀찮아서 입던 옷을 입거나
입던 옷이 편해서 그것을 계속 입습니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 앉는 자리에 계속 앉습니다.
나이 든 사람끼리 성당 자리나 식탁 자리를 놓고 싸우기도 하고,
싸우지는 않아도 자기가 앉던 자리에 누가 앉으면 마음 편치 않고 불만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젊었을 때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도 있고,
소유욕도 있어서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는 데 비해
나이 먹으면 관심도 호기심도 현저히 떨어지고 관성대로 길들어진 대로 삽니다.
그래서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하고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바꾸는 것이 싫고 바뀌는 것은 더 싫어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이래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편한 대로 살고 길들어진 대로 살아도 되는데
영적인 면에서도 바꾸는 것이 싫고 바뀌는 것이 싫으면 되겠습니까?
내가 점점 세속적으로 편한 것만 찾고 편한 것에 길들어져 있는데
이런 삶과 습관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내가 바뀌려고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인간적으로 기분을 바꾸기 위해 머리도 한번 잘라 보고 새 옷도 사 입곤 하는데
영적으로는 어떻습니까? 바꾸고 싶고 바뀔 원의가 지금 나에게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오늘 듣게 되거든 므리바에서처럼 마싸의 그날의 광야에서처럼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고 초대송 시편은 오늘도 우리에게 좨치는데
오늘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새롭게 듣고, 그 말씀대로 바뀔 의지가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