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5,33-39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따집니다.
“당신의 제자들은 왜 단식하지 않느냐?”
예수님의 대답은 뜻밖입니다.
“지금은 신랑이 함께 있는 ‘혼인 잔치’의 때다.”
곧 하느님 나라라는 ‘기쁨의 새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새로움’을 담을 그릇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드십니다.
새 천으로 헌 옷을 깁지 않고,
새 포도주를 헌 부대에 담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갓 담근 새 포도주는 아직 ‘살아’ 부글부글 발효합니다.
그 힘을 굳고 뻣뻣한 헌 부대는 견디지 못해 터져 버립니다.
그러니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여기서 ‘새 포도주’는 새로 부어지는 은총이고,
‘부대’는 그 은총을 담는 우리 ‘마음’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자기 삶으로 증언했듯,
은총은 옛 삶에 ‘덧대는 헝겊’이 아닙니다.
그의 방탕하던 옛 삶은 은총이라는 새 포도주 앞에서
‘터지고’ 새로워져야 했습니다.
“낡은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에페 4장 참조).
은총은 우리를 ‘조금 손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 빚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마지막에 서늘한 한마디를 더하십니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것을 원하지 않는다.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여기에 영적 성찰의 거울이 있습니다.
우리는 익숙한 것에 길들면,
그것이 나를 옭아매도 ‘이게 편하다’며 붙듭니다.
새로 다가오시는 은총이 도리어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바로 그 ‘굳어 버린 익숙함’이 새 부대가 되기를 막습니다.
다만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옛것을 무조건 버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은총을 담을 만큼
마음이 유연하고 부드러워지라’는 말씀입니다.
굳은 부대는 새 포도주를 잃고,
부드러운 부대는 새 포도주를 살립니다.
영적 성찰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 복음은 이렇게 묻습니다.
‘나는 지금 굳은 헌 부대인가, 부드러운 새 부대인가?’
‘나는 은총의 새로움을 반기는가, ‘묵은 것이 좋다’며 밀어내는가?’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묵은 것이 좋다’며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는가?
나에게 은총은 ‘덧대는 헝겊’인가, ‘새로 빚음’인가?
내 마음은 새 포도주를 담을 만큼 ‘부드러운가’?
나는 날마다 ‘새 부대’로 새로워지려 하는가?
주님,
‘묵은 것이 좋다’며 굳어 버리지 않게 하소서.
제 마음을 부드러운 ‘새 부대’로 새롭게 하시어,
당신의 새 포도주를 넘치도록 담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