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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2026년 8월 29일 토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학교 말씀 기도

by 고도미니코 posted Aug 2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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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
마르코 6,17-29
요한이 감옥에 갇히고 목숨을 잃은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진리를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임금에게마저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바른말을 하였고, 그 대가로 목숨을 내어놓았습니다.
요한은 권력 앞에서 ‘아첨’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복음의 장면은 어둡습니다.
취기 오른 잔치, 사람을 홀리는 춤,
경솔한 맹세, 앙심을 품은 헤로디아,
그리고 ‘손님들 앞 체면’ 때문에
한 사람의 목숨을 내어 준 약한 헤로데.
‘쟁반에 담긴 머리’는
진리가 권력과 허영에 짓밟히는 순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결코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그의 한평생은 ‘자기를 가리키지 않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작아짐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아짐’이 마침내
‘목숨을 내어 줌’에 이르렀을 때,
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사랑의 완성’이었습니다.

성 암브로시오는
권력 앞에서 진리를 말하는 일의 무게를 알았습니다.
(그 자신도 황제 앞에서 굽히지 않고
바른말을 한 주교였습니다.)
그는 일깨웁니다.
권력은 진리를 말하는 ‘입’을 막을 수는 있어도,
진리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고.
요한의 목은 베였지만,
그가 가리킨 ‘하느님의 어린양’은
온 세상에 더욱 커지셨습니다.

사랑·기쁨의 관점에서 보면
요한은 ‘신랑의 친구’였습니다.
그는 신랑의 목소리만 들어도
‘기쁨이 가득 찼다’ 하였습니다(요한 3,29).
자기가 커지는 데서가 아니라
‘그분이 커지시는’ 데서 기뻐한 것입니다.
그 기쁨이 그를 죽음 앞에서도 자유롭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체면’ 때문에 옳지 않은 일을 따라가지 않는가?
나는 권력·다수 앞에서도 ‘옳지 않습니다’ 말할 수 있는가?
나는 ‘내가 커지기’보다 ‘그분이 커지시기’를 기뻐하는가?
나는 나를 가리키는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가?

주님,
체면과 두려움 앞에서 진리를 굽히지 않게 하소서.
나를 낮추어 당신을 더 크게 모시게 하시고,
그 작아짐을 기쁨으로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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