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극치의 사랑이며 사랑의 극치다 (2026,8.28 독서묵상)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은 1코린토 1,18의 핵심이며, 그리스도교 신앙이 세상의 논리와 어디에서 갈라지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십자가는 왜 ‘어리석음’인가? 세상의 논리는 대체로 올라가는 것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이 가지고, 더 인정받고, 더 강해지고, 더 높은 자리에 서며, 나의 옳음을 증명하고 상대를 이기는 것이 성공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예수님은 정반대의 길을 보여주십니다. 내려가고, 내어주고, 낮아지고, 받아들이고,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세상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입니다. 힘이 있으면서 힘을 행사하지 않고, 모욕을 받으면서 보복하지 않으며, 버림받으면서도 사랑을 거두지 않고, 자신을 살리기보다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오로는 바로 그 어리석어 보이는 자리에서 하느님의 힘이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힘은 ‘지배하는 힘’이 아니라 ‘사랑하는 힘’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느님의 힘을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고, 고통을 없애 주는 능력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역사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가 보여주는 더 깊은 하느님의 힘은 고통을 없애는 힘 이전에 고통 속에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힘입니다. 미움 속에서도 사랑하고, 상처받고도 용서하며, 인정받지 못해도 선을 행하고,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도 상대를 살리기 위해 한 걸음 물러서는 것, 내가 중심이 되지 않아도 기뻐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십자가에서 나타나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단순히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사건 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야 할 하느님 삶의 방식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현실에서 십자가는 더욱 구체적입니다. 십자가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공동체와 인간관계 안에서 아주 작고 현실적인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내 말을 끝까지 주장하고 싶은 순간에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것,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는 것, 누군가 나보다 빛날 때 그것을 시기하지 않고 기뻐하는 것, 받은 상처를 되갚을 수 있지만 되갚지 않는 것, 상대를 변화시키려 하기보다 먼저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묵묵히 하는 것, 나의 선행과 희생을 기억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
바로 이런 순간에 세상의 지혜는 속삭입니다. “왜 네가 져야 하느냐?” “왜 네가 먼저 용서해야 하느냐?” “왜 네가 내려놓아야 하느냐?” 그때 십자가는 말합니다. 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다.” 여기에 복음의 역설이 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드러나는 우리 믿음의 현주소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십자가를 알고 있는가가 아니라 십자가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가입니다. 십자가를 목에 걸고 있으면서도 관계에서는 반드시 이기려고 한다면, 십자가를 바라보면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면,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면서도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마음속에서 계속 심판하고 있다면, 우리는 십자가를 신앙의 상징으로 받아들였을지는 몰라도 아직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인지 모릅니다.
십자가의 가장 어려운 지점은 고통 자체가 아닙니다.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옳아야 하고, 내가 인정받아야 하고, 내가 대접받아야 하고, 내가 결정해야 하고, 사람들이 내 수고를 알아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죽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고통을 찾아가는 영성이 아니라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사랑으로 건너가는 파스카의 길입니다.
프란치스칸적으로 바라본다면 성 프란치스코에게 십자가는 단순히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닮아가야 할 사랑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기에 프란치스코도 작은 자의 자리로 내려갑니다. 가난은 단순히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움켜쥐지 않는 것이고, 겸손은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지 않아도 괜찮은 자유이며, 작음은 힘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힘으로 상대를 지배하지 않는 복음적 선택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하느님의 힘”이라는 바오로의 선언을 오늘 우리의 언어로 옮긴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십자가는 내려놓아도 무너지지 않는 힘이며, 져주어도 작아지지 않는 힘이며, 용서하고도 손해 보았다고 여기지 않는 힘이며, 다른 사람이 빛나도 기뻐할 수 있는 힘이며, 상처받으면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힘이며, 마침내 나를 내어주면서도 기쁨을 잃지 않는 힘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힘이 없으셨던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이 하느님의 힘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가장 현실적인 질문은 이것일 것입니다. “나는 십자가를 믿고 있는가?”보다 “오늘 나의 관계 안에서 나는 십자가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십자가는 성당 벽에 걸려 있을 때보다 내가 옳음을 내려놓고 사람을 살리는 순간, 내가 높아지는 대신 낮아지고, 움켜쥐는 대신 내어주며, 판단하는 대신 품어주고, 보복하는 대신 용서할 때 비로소 우리 안에서 하느님의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