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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깨어있음에 대한 현실적 진단

by 이마르첼리노M posted Aug 2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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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깨어있음에 대한 현실적 진단

 

복음에서 말하는 깨어 있음은 단순히 기도를 많이 하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상태를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 내 안에서 무엇이 나를 움직이고 있는지, 나는 누구의 뜻을 따라 살고 있는지, 그리고 내 앞에 오시는 주님을 알아보고 있는지를 분별하는 영적 감각에 가깝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4,42)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잠든다는 것은 육체적인 잠보다 영혼의 무감각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잠들어 있음에 대한 현실적 진단

가장 위험한 잠은 내가 깨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잠들어 있는 상태입니다. 바리사이들이 그랬습니다. 말씀을 알고, 기도하고, 계명을 지키고 있었지만 정작 자기들 앞에 서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신앙생활 자체가 깨어 있음의 보증이 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도 이런 모습은 매우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익숙함의 잠, 미사와 기도와 말씀을 반복하지만 더 이상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자기 확신의 잠-“나는 옳다는 확신이 너무 강해 다른 사람의 말과 하느님의 뜻이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비교의 잠-내가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지, 다른 사람보다 잘하고 있는지가 중요해집니다. 분주함의 잠-많은 일을 하느라 정작 왜 이 일을 하는지를 잊어버립니다. 주님의 일을 하면서 주님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판단의 잠-다른 사람의 허물은 잘 보이는데 내 안의 들보와 숨은 동기는 보이지 않습니다. 무관심의 잠-고통받는 사람을 보고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복음에서 이것은 매우 심각한 잠입니다. 최후 심판에서 주님은 가장 작은 이들의 모습으로 이미 우리 곁에 와 계셨기 때문입니다(마태 25,31-46). 통제의 잠-하느님께 맡긴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사람과 상황이 내 생각대로 움직이기를 바랍니다. 보이기 위한 신앙의 잠-선한 일을 하지만 누군가 알아주기를 기대하고, 인정받지 못하면 서운해집니다. 마태오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 특별히 경계하신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음의 반대는 반드시 악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깨어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깨어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아차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하느님 앞에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지금 내가 이 말을 왜 하려고 하는가?” “사랑하기 위해서인가, 이기기 위해서인가?” “형제를 바로잡기 위해서인가,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인가?” “봉사하기 위해서인가, 인정받기 위해서인가?” “공동체를 위한 것인가, 결국 내 뜻을 관철하기 위한 것인가?” 이 질문 앞에 정직하게 서는 순간부터 깨어 있음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복음적 깨어 있음은 특별한 영적 체험보다 관계의 현장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누군가 나를 불편하게 했을 때, 무시당했다고 느꼈을 때,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다른 사람이 나보다 인정받을 때, 방해를 받을 때 내가 보이는 태도, 곧 내가 한 일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가 바로 깨어 있음의 시험대입니다.

 

그 순간 내 안에서 올라오는 분노, 질투, 억울함, 인정욕구, 지배욕, 자기방어를 즉시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씩 깨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묻게 됩니다. “주님, 지금 이 사람과 이 사건을 통하여 저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계십니까?” 여기에서 깨어 있음은 자기 감시가 아니라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감수성이 됩니다.

 

복음에서 깨어 있음의 결정적인 기준

예수님의 복음을 종합해 보면 깨어 있음에는 아주 현실적인 기준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이 보이느냐는 것입니다. 길가에 쓰러진 사람이 보이는가, 배고픈 사람이 보이는가, 외로운 사람이 보이는가, 공동체 안에서 말없이 상처받고 있는 형제가 보이는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안에도 하느님의 형상이 보이는가. 사제와 레위인은 길을 지나갔지만 착한 사마리아인은 보았습니다. 복음에서 깨어 있는 눈은 결국 자비의 눈입니다. 그래서 깨어 있음의 가장 심각한 위기는 기도를 하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기도하면서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 말씀을 읽으면서도 형제의 아픔이 들리지 않는 것,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내 옆 사람을 도구처럼 대하는 것입니다.

 

결국 복음의 깨어 있음은 이렇게 압축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많이 기도했는가보다 기도를 통하여 무엇을 보게 되었는가. 내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보다 말씀 앞에서 얼마나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보다 그 일을 통하여 누가 살아났는가. 내가 얼마나 옳은가보다 내 옳음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은 없는가. 그리고 오늘 내 앞에 가장 작은 모습으로 찾아오시는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있는가. 어쩌면 예수님의 깨어 있어라는 말씀은 미래에 오실 주님만 기다리라는 말씀이 아닐 것입니다. 이미 와 계시고, 현재 오고 계시는 주님을 놓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형제의 얼굴로, 불편한 사건으로, 실패와 좌절로, 가난한 사람으로, 나를 비판하는 사람으로, 때로는 내가 외면하고 싶은 내 자신의 진실을 통하여 주님은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십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다는 것은 눈을 크게 뜨고 긴장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사는 것입니다. 깨어 있음은 주님을 기다리는 일이면서 동시에 지금 여기에서 주님을 알아보는 일이고, 자기 자신에게서 깨어나 형제를 바라보며, 마침내 모든 관계와 사건 안에서 주님, 여기에도 당신이 계셨군요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되는 복음적 삶의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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