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산길 3
-그리스도교 관상-
일상적인 삶 안에 숨어 있는 신비를 알아보는 것을 그리스도교에서는 "관상"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영어로 contemplation이라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명상"이라고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신경정신과 의사들이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명상을 처방전으로 내려줄 정도로 명상이 널리 보급되고 있다 하고, 한국에서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여러 가지 명상법이나 명상 훈련이 제법 소개되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말씀 드리는 관상은 그리스도교 관상으로서 요즘 유행하고 있는 명상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성경에는 관상이라는 명사가 나타나지 않지만, "관상하다"는 동사는 여러 형태로 다양하게 등장하며, 초대 교부 시대부터 현재까지 관상은 가톨릭 교회 내에서 널리 사용되어 온 지극히 그리스도교적인 신학 개념입니다.
약 2천 년 동안 펼쳐져 온 가톨릭 교회의 역사 안에서 관상에 대해 실로 많은 논쟁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그 다양한 개념을 일일이 다 소개할 수는 없고, 아주 간략하게 핵심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관상이란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신비를 영적인 감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례를 하나 들겠습니다.
연어의 생애는 어미 연어가 시내 상류에 알을 낳고 수정한 후 모래나 자갈을 덮은 다음 시작된다. 시냇물은 알에 충분한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반드시 흘러야 한다. 연어 새끼의 배에는 성장에 필요한 영양을 저장하는 큰 난황을 가지고 있으며, 자갈 밑에서 부화된 새끼는 난황이 흡수되기까지 자갈 밑에 숨어 살다 3~4cm 정도의 크기가 되면 좀더 큰 강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강을 떠날 때가 되면 바다에 적응하여 살 수 있도록 생리적 변화가 일어난다. 강 어구에서 해수에 적응하는 기간을 가진 다음, 넓은 바다로 향한다. 연어는 바다에서 4-5년 전후로 살다 고향의 시냇물로 수천 킬로미터를 헤엄쳐 돌아온다.
부화된 연어는 1년이 지나면 그 크기가 25cm 정도가 되고, 3년이면 57cm 내외로 자라며, 성장이 끝난 연어는 70-90cm 정도가 된다.
연어는 귀소본능에 따라 반드시 자기가 자란 강으로 돌아온다. 강 입구에서 약 1년 정도 자랄 때 맡은 냄새를 기억하고 있다 찾아오는 것이다. 동해로 흘러드는 시냇물들은 인간의 과학으로 보면 그 화학적 성분의 차이가 없으나, 연어는 예민한 미각과 후각으로 고향의 시냇물을 정확히 구별해 낸다. 그래서 동해의 연어 가운데에는 멀리 알래스카까지 가는 연어도 있지만, 놀랍게도 자기 고향의 시냇물을 찾아올 수 있다. 알을 낳기 위해, 즉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연어가 지니고 있는 이 놀라운 감각! 경탄스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개발이나 오염 등으로 연어가 자라난 강물이 변질되어 고유한 냄새가 사라지면, 그 강을 끝내 찾지 못하고 바다에서 죽게 된다. 연어는 다른 강으로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시내 가까운 강 어구에 이르면 연어는 치어 때와 같이 강물에 적응하기 위해 생리적 변화를 일으키며 산란할 준비를 한다. 연어의 산란기는 10월부터 12월 사이로, 이 때가 되면 연어는 먹이를 먹지 않고 강 상류로 올라와 수심이 10~25cm 정도 되는 자갈이나 모래질인 강 바닥에 직경 1m,
깊이 50cm 정도 되는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산란하며, 수컷이 수정한 다음 이를 모래 등으로 덮는다. 산란을 하는 연어는 만 3~4년생이며, 한 마리의 연어는 약 2,000~6,000개의 알을 낳는다. 연어는 단 한 번의 산란을 위하여 고향의 냇물을 찾아오는 것이고, 산란이 끝나면 곧 죽는다.
이토록 신비로운 연어의 생애를 인간의 과학으로 과연 설명할 수 있을까요? 연어 안에 숨겨진 생명의 신비에 우리는 그저 탄성을 올릴 따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연어 이야기를 들으면서 연어의 신비를 보고 느끼는 것, 이것이 곧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관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어의 신비는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신 생명의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신비는 온 우주 안에 펼쳐져 있고, 우리는 이런 저런 방식으로 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신비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관상을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관상하도록 창조된 존재입니다. 익명적으로라도 인간은 관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갓난아기도 심지어 태아마저도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면서 익명적으로 관상을 하게 됩니다. 관상하지 않는 인간은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런 지평 위에서 인간은 관상하는 존재, 즉 관상인(homo contemplans)이라 할 수 있고, 관상인은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신비를 유희하는 인간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