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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2026년 8월 21일 금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학교 말씀 기도

by 고도미니코 posted Aug 2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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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
마태 22,34-40
율법 교사는 ‘가장 큰 계명 하나’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둘’을 주십니다.
하느님을 온 존재로 사랑하는 것(첫째),
그리고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둘째).
이 둘은 떼어 놓을 수 없는 ‘한 쌍’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주님께서는,
‘온 율법과 예언서’ ― 곧 성경 전체 ―가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고 하십니다.
수많은 계명이 결국 ‘사랑’이라는 한 뿌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복음을 짧지만 깊은 한마디로 요약했습니다.
“사랑하라,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네가 원하는 것을 하라.”
사랑이 뿌리에 바로 서 있으면,
그 위에서 자라는 모든 행동도 바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또 〈고백록〉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사랑이 곧 나의 무게이니,
나는 그 사랑에 이끌려 어디로든 가게 된다.”
마치 돌이 무게에 이끌려 떨어지고,
불꽃이 가벼움에 이끌려 솟아오르듯,
사람은 ‘가장 사랑하는 것’ 쪽으로 이끌려 갑니다.

그러니 오늘 복음의 물음은 결국 이것입니다.
‘내 사랑의 무게는 어디로 기울어 있는가?’
하느님을 가장 사랑하면 그 사랑이 나를 그분께로 이끌고,
헛된 것을 더 사랑하면 그것이 나를 끌어내립니다.
두 사랑(하느님과 이웃)은 또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1요한 4,20).

오늘 기리는 성 비오 10세 교황이
바로 이 ‘사랑의 중심’으로 모든 것을 모으려 한 분입니다.
그의 표어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는,
흩어진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한 중심에 다시 모으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는 ‘하느님 사랑’의 원천인 성체를
어린이에게까지 활짝 열어 주었고,
‘이웃 사랑’으로 가난한 이들을 평생 품었습니다.

평화·인내의 관점에서 보면
평화는 ‘사랑의 무게’가 바로 설 때 옵니다.
그리고 그 두 사랑을 날마다 회복하는 것은
한 번에 되지 않는 ‘인내의 길’입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의 ‘사랑의 무게’는 어디로 기울어 있는가?
나는 하느님을 ‘온 존재로’ 사랑하는가?
나는 이웃 사랑과 하느님 사랑을 떼어 놓지 않는가?
나는 흩어진 삶을 ‘사랑’이라는 중심에 다시 모으는가?

주님,
제 사랑의 무게가 당신께로 기울게 하소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하나로 잇게 하시고,
흩어진 모든 것을 당신 사랑 안에서 새롭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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