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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2026년 8월 20일 목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학교 말씀 기도

by 고도미니코 posted Aug 1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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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
마태 22,1-14
이 비유의 중심에는 ‘잔치’가 있습니다.
임금은 아들의 혼인 잔치를 위해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차려 둡니다.
하느님의 초대는 이토록 풍성하고 기쁜 ‘잔치’입니다.
그런데 먼저 초대받은 이들은 오지 않습니다.
악해서가 아니라, ‘바빠서’입니다.
“어떤 자는 밭으로,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가 버렸다.”
분주한 일상이 ‘사랑의 잔치’를 밀어낸 것입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바로 이 ‘무관심’이 가장 큰 비극이라 합니다.
잔치를 거부한 것은 ‘대단한 악행’이 아니라
‘아랑곳하지 않음’이었습니다.
그러자 임금은 종들을 ‘거리로’ 내보내
‘악한 사람 선한 사람 가리지 않고’ 모두를 불러들입니다.
여기에 복음의 놀라운 너그러움이 있습니다.
자격을 따지지 않고 ‘누구나’ 잔치로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혼인 예복’ 없이 들어왔습니다.
그 시대에 혼인 예복은 주인이 ‘내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예복이 없다는 것은
‘차려진 사랑을 받아 입기를 마다한 것’입니다.
크리소스토모는 이 예복을 ‘사랑(자비)의 삶’이라 풀이합니다.
잔치에 ‘들어오는 것(믿음)’만으로는 부족하고,
‘사랑의 예복(자비의 실천)’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르심은 ‘거저’ 주어지지만,
그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오늘 기리는 성 베르나르도가
바로 이 ‘사랑의 예복’을 평생 노래한 분입니다.
그에게 이 혼인 잔치는
영혼이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사랑의 혼인’이었고,
그 예복은 ‘한도 없이 사랑하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분주한 세상 한가운데에서도
‘사랑이신 그분’과의 잔치를 가장 앞자리에 두었습니다.

평화·인내의 관점에서 보면
평화는 ‘잔치에 앉는 자유’에서 옵니다.
분주함을 핑계로 잔치를 미루지 않고,
멈추어 그분 사랑 안에 ‘쉬는’ 것 ―
그것이 평화의 시작입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분주함’을 핑계로 사랑의 잔치를 미루지 않는가?
나는 차려진 ‘사랑의 예복’을 받아 입었는가?
나의 믿음은 ‘자비의 실천’으로 옷 입고 있는가?
나는 좋은 이 나쁜 이 가리지 않고 부르시는 그 너그러움을 닮는가?

주님,
분주함을 멈추고 당신 사랑의 잔치에 앉게 하소서.
차려 주신 ‘사랑의 예복’을 받아 입게 하시고,
베르나르도처럼 ‘한도 없이’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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