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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2026년 8월 19일 수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학교 말씀 기도

by 고도미니코 posted Aug 1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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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
마태 20,1-16
이 비유는 처음 들으면
어딘가 ‘불공평’해 보입니다.
온종일 뙤약볕에서 일한 이와
한 시간 일한 이가 같은 품삯을 받다니요.
그러나 주인의 대답을 자세히 들어 보면,
그는 ‘불의’를 저지른 것이 아닙니다.
온종일 일한 이에게 ‘합의한 품삯’을 그대로 주었습니다.
문제는 ‘적게 받은 것’이 아니라,
‘남이 더 받는 것을 본 것’이었습니다.

성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는
이 비유에서 ‘하느님의 셈법’을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삯을 지불하는 고용주’가 아니라,
‘넘치게 베푸시는 너그러운 분’이십니다.
하늘 나라는 ‘일한 만큼 받는 임금’이 아니라
‘거저 주시는 은총’입니다.
그래서 ‘다섯 시에 온 이’ ―
곧 늦게 회개한 이, 마지막에 부름받은 이에게도
‘온전한 한 데나리온(구원)’이 주어집니다.

온종일 일한 이들의 잘못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비교’를 시작한 순간 평화를 잃었습니다.
주인은 묻습니다.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본디 ‘네 눈이 악하냐?’는 표현입니다.)
남의 몫을 시기하는 ‘악한 눈’이
자기가 받은 정당한 은혜마저
‘불평’으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일치의 관점에서 보면
이 비유는 깊은 울림을 줍니다.
일꾼들은 ‘일한 시간’은 저마다 다르지만,
끝내 ‘똑같은 한 데나리온’을 받습니다.
우리의 일치도 그러합니다.
저마다 걸어온 길과 전통은 다르지만,
받은 ‘한 주님, 한 구원’은 같습니다.
‘우리가 더 오래 일했다’는 비교를 내려놓고
‘같은 한 데나리온’을 함께 기뻐할 때,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평화·인내의 관점에서 보면
온종일의 인내도 ‘비교’ 앞에서는 무너집니다.
참된 평화는
‘남이 얼마 받았나’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받았나’에 눈을 둘 때 옵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남과 비교하는 눈’으로 평화를 잃지 않는가?
나는 남이 더 받는 것을 ‘시기’하지 않는가?
나는 내가 받은 ‘한 데나리온’에 감사하는가?
나는 늦게 온 이도 ‘같은 형제’로 환영하는가?

주님,
남과 비교하는 ‘악한 눈’을 거두어 주소서.
당신의 너그러움을 시기하지 않게 하시고,
제가 받은 ‘한 데나리온’에 감사하며 하나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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