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성모 승천(1650)
작가 : 니콜라오 푸생(Nicolas Poussin : 1594-1665)
크기 : 켐퍼스 유채 134.3 x 98.1cm
소재지 : 미국 워싱턴 국립 미술관
가톨릭 교회가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성모님의 승천교리를 전례로 경축하는데 대해 개신교 신자들은 많이 의아해 하면서 이것을 가톨릭 신자들의 성서에 대한 무지와 가톨릭 교회가 마리아 숭배교라는 해괴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좋은 증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성서가 크리스도 교회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고 오늘날 성서가 그리스도교의 정전으로 정착된 것에 가톨릭 교회의 공로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러나 성경이 이렇게 중요하지만 성서 내용에 대한 것은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아니다.
성서는 예수님의 3년간 공생활을 기록한 녹취록이 아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관심이 있던 어떤 인사가 녹음기를 달고 다니며 예수님의 언행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이 면을 그의 복음서 뒷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명백히 제시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21,30-31)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 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요한 21,25)
성모승천 교리가 성경에 기록되지 않는 것은 위와 같은 이유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성경에 나타나기 전에 신자들의 신앙 감각에 의해 열심한 신자들이 확실히 믿고 있었기에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을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가톨릭 교회는 신자들의 신앙감각(Sensus fidelium)을 신앙의 중요한 근거로 인정하고 있으며 현대에서도 이런 경우를 찾을 수 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선종 하시던 시기, 유럽의 많은 젊은이들 간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임종을 준비하고 계시는 교황님을 찾아 로마를 순례하는 것이다. 그때 공교롭게도 로마는 많은 비가 내리는 시기였는데 많은 젊은이들이 베드로 대성당 광장에 무릎을 꿇고 평소에 온 세상을 다니시며 많은 위로를 주시던 교황님을 위해 기도했다.
이런 과정에서 교황님의 임종이 선포되자, 누가 선동한 것도 아닌데 많은 젊은이들 사이에 교황님을 성인 품에 올려야 한다는(Santo subito!) 라는 함성이 터졌다.
교회는 신자들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이런 신앙 감각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경하는 전통이 있으며, 성모 승천 역시 이런 관점을 생각하면 신자들이 이미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에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교회 역사에서 보면 5세기 부터 성모 승천에 관한 것이 신학적 차원에서 거론된 것을 볼 수 있다.
과거 우리 교회에서는 성모 승천을 ‘몽소승천’(蒙召昇天)이라고도 불렀는데 이것이 바로 성모 승천의 실상을 너무도 정확히 표현한 것이다.
즉, 하느님의 아들로서 스스로의 능력으로 하늘에 올라가신 예수 승천(Ascension)과 달리 하느님의 도움에 의해 ‘올림을 받음’(Assumption) 성모님의 승천을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것을 성서라는 틀안에서만 관찰하는 것은 편협한 성서의 태도이고, 교회의 역사 안에 영근 신자들의 신앙 감각이나 교회의 전통 차원에서도 바라보는 것은 성서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를 아우러면서도 인간적인 따스함을 느끼게 만드는 인간적 차원의 성서에 대한 이해로 볼 수 있다.
오직 성서 만으로를 외치는 외치는 개신교 신자들이 자기들 끼리 보이는 편협하고 전투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볼 때 더욱 이것이 설득력있는 요청으로 다가오면서 성서적 관점 이상을 표현하는 가톨릭 신앙의 넉넉함이 자랑스러움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프랑스 바로크 회화의 대표적 작가로 인정받으며 특히 중심 인물들은 상당히 바로크적 특성을 보인다. 그의 예술적 운명을 진정으로 점화시킨 것은 1624년 로마로 떠난 여정이었다. 그의 로마 여행은 단순한 지리적 이동이 아니었고, 그것은 고대의 심장부로 뛰어드는 몰입이었으며, 자신의 미학적 비전을 정의하게 될 영감의 원천을 찾아 떠난 순례였다고 볼 수 있다.
작가의 예술 양식은 부정할 수 없을 만큼 고전 예술의 규범, 특히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가 옹호했던 원칙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이태리를 여행하면서 받은 풍요로운 체험에 큰 영향을 받아는 것이며 이 작품 역시 성모 승천은 바로크 양식에 대한 절제되고 세련된 그의 예술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전형적인 작품이다.
바로크 양식의 시작이 바로 종교 개혁에 대한 교회의 태도와 연관 된다는 것은 바로크 실상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 교회 성직자들이나 교황청의 부패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종교개혁으로 교회는 독일 북부의 많은 지역을 잃는 참담한 패배를 겪어야 했다.
교회가 이런 패배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작된 게 바로크 양식이며 예수회가 선도해서 교회를 멋지게 만들어 하느님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으로 새로운 선교의 도구로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기대했던 성과를 얻어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교회를 찾는데 역할을 하기도 했으나 문제점이라면 지나치게 현란한 교회의 모습은 복음의 소박함과 단순성을 가리는 역기능도 있었기에 작가는 바로 이런 맹점을 보완하기 위한 방법으로 철저한 지성과 이성의 관점을 강조해서 표현했다.
그는 절제된 색조를 사용함으로서 바르크 예술이 줄 수 있는 과장된 회화성을 피하면서 완벽한 균형과 질서의 강조를 통해 지적인 결론을 돌출 할 수 있도록 인도하고 있다.
승천하시는 성모님은 십자가의 예수님처럼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로 오르고 계신다. 여기에서 전통적인 성모승천 작품과는 파격적으로 절제된 면이 하늘과 땅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전까지 승천화에 항상 등장하던 하늘에서 성모님을 기다리는 성부와 성자의 모습이나, 땅에서 하늘로 오르시는 성모님을 환송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다 절제되면서 성모님의 승천 자체만 강조하고 있다.
성모님을 떠받들고 하늘을 오르고 있는 네 명의 천사들은 성모님의 무게 때문에 힘들어 보이나 천사들은 성모님을 모신다는 기쁨에 성모님께 밀착된 상태로 한몸이 되어 하늘을 오르고 있다. 예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이 바로 자기들과도 함께 하고 있음에 대해 더 없는 기쁨과 만족감으로 최선의 노력을 기쁘게 하고 있는 모습이다.
작가는 많은 다른 승천화에서 성모님이 승천하시는 지상에서 제자들이 환송하는 것과 지상 풍경을 과감히 생략함으로서, 하늘로 오르는 성모 마리아와 그녀를 둘러싼 천사들의 군상에만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작가는 성모님이 4명의 천사들의 옹위 속에 승천하시는 배경으로 스푸마토(sfumato) 기법을 사용했다. 이는 색조를 미묘하게 섞어 천상적인 안개 효과를 내고 윤곽선을 부드럽게 만드는 기술로, 깊이감과 단순한 인물 배치에서도 성스러운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는 거장다운 인물과 주변 배치를 완벽히 했다.
작가는 이런 과감한 생략법을 통해 성모님과 천사들만 공중에 집중 배치함으로 그리고 구름 위에서 안정감 있게 하늘로 떠오르고 있는 성모님의 모습은 ‘승천’이라는 주제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