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5,9-17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 기념일 고유 복음)
오늘 복음은 사랑의 ‘근원’과 ‘절정’을 함께 보여 줍니다.
근원은 이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우리의 사랑은 ‘스스로 짜내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아드님께로, 다시 우리에게로
‘흘러내려 온 사랑’입니다.
그 사랑 ‘안에 머무를 때’ 비로소 우리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절정은 이것입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사랑(카리타스)을 그리스도인 삶의 심장이라 했습니다.
그는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을 하라’ 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바르게 ‘사랑’에서 흘러나올 때,
그 삶은 길을 잃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끝내
‘자기를 내어 주는’ 데까지 자랍니다.
오늘 기리는 콜베 성인이
이 말씀을 글자 그대로 살아 냈습니다.
그가 목숨을 대신 내어 준 사람은
오랜 친구도, 가족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함께 갇힌 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종이 아니라 친구’라 부르셨듯,
콜베는 낯선 그 사람을 ‘친구’로 끌어안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사랑은 더욱 ‘큰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남아 있는 열매’가 되어,
그가 살린 사람과 온 교회 안에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주목할 것은,
콜베의 그 결단이 ‘한순간의 충동’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평생 ‘성모님께 봉헌된 사랑’ 안에 머문 삶이
맺은 ‘마지막 열매’였습니다.
사랑 안에 ‘머무른’ 사람만이,
결정적 순간에 사랑을 ‘내어 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흘러내려 온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가?
나의 사랑은 ‘서로 사랑하라’는 행동으로 이어지는가?
나는 낯선 한 사람도 ‘친구’로 끌어안을 수 있는가?
나의 작은 선행들은 ‘더 큰 사랑’을 향해 자라고 있는가?
주님,
아버지에게서 흘러온 당신 사랑 안에 머물게 하소서.
그 사랑을 ‘서로 사랑하라’는 행동으로 살게 하시고,
콜베처럼 낯선 이도 친구로 끌어안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