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게 죄지은 형제를 어떻게 타일러야 하는지 봤는데
오늘 복음은 그 연장선에서 그를 왜 용서하고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지 봅니다.
그런데 오늘 비유를 보면 우리 인간은
자기 용서는 한없이 받고 싶어 하고,
남의 용서는 조금도 해주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지독한 이기주의 또는 자기중심주의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용서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용서를 받은 사람은 용서가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용서의 때가 되면 용서해야 합니다.
돈을 받은 사람은 돈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돈을 받았는데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다면 그 돈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곧 하찮게 여기며 흘려버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럴 자격 없는 나를 용서해 주셨는데
그 용서가 그의 마음에 없다면 그는 그 용서가 맘에 들지 않고,
하찮게 여겼기에 그 귀한 용서에 감사하지도 않고 흘려버린 것이지요.
그러므로 진정 하느님의 용서를 받았다면 그래서 그에 대해 감사하며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면 용서의 때에 용서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용서는 한 번에 그치지 않을 것이고,
오늘 베드로 사도처럼 묻지도 않을 것입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느님의 용서에 감사하며 그 용서로 형제를 용서한다면 그러지 않을 텐데
알량한 나의 용서로 가까스로 용서했는데, 똑같은 죄를 다시 내게 지으면
이런 놈을 또 용서해야 하냐, 더 이상은 안 된다며 길길이 날뛸 것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용서의 욕심도 있습니다.
이는 무한 용서의 욕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의 대가랄까 보람이랄까 그런 것을 바란다는 뜻입니다.
네가 진정 잘 되길 바라며 용서하지 않고
어렵게 용서한 나의 용서가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 하는 용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정말 어렵게 용서해 주었는데 용서한 보람 없게
얼마 안 가 같은 죄를 또다시 내게 짓는다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그럴 때 화가 나는 것이 인간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사랑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욕심에서 기인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도 마음으로 용서하라는 뜻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