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아주 모욕적인 말로
자기 딸의 마귀 병을 고쳐 달라는 청을 거절하십니다.
치유는 사람에게나 하는 것이지 강아지에 불과한 사마리아 사람은
치유해 주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의문을 가집니다.
여인을 강아지로 여기신 것이 진심이었을까?
치유해 주지 않겠다는 말씀이 진심이었을까?
다시 말해서 주님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강아지로 여기셨고
애초부터 여인의 딸을 치유해 줄 마음이 없으셨느냐 그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압니다.
강아지로 여긴 것은 주님이 아니라 당대 이스라엘 사람들이고,
애초에 치유해 줄 마음을 갖고 계셨지만 그리 말씀하신 것 말입니다.
만일 당대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주님도 사마리아 사람들을 강아지로 여기셨다면
사마리아 지역으로 들어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아예 상종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사마리아 지역으로 들어가셨다는 것은
병자를 만나게 될 것을 예상하고 들어가신 것이고,
만나면 고쳐주실 마음으로 들어가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강아지 운운하며 고쳐 줄 마음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까?
우리말에 ‘마음에도 없는 말’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야말로 그 말은 마음에도 없는 말이고
주님 마음속에는 이미 다른 말이 있었을 겁니다.
그것은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여인의 큰 믿음을 드러내시려고 마음에도 없는 말,
너희는 강아지라는 매우 모욕적인 말을 일부러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여인아 너 참으로 겸손하구나! 라고 하지 않으시고,
왜 믿음이 참으로 크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모욕적인 말을 여인이 겸손 때문에 참은 것이 아니라
믿음 때문에 참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은 그렇게 하시지만 그것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그분이 하신 거라고,
그분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다른 유대인들처럼 강아지로 여기지 않으실 거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딸을 고쳐주실 분이라고 믿었기에 참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인의 믿음을 드러내기 위해 그리하신 것이기도 하지만
유대인들을 부끄럽게 하시기 위해 그리하신 거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토록 무시하는데도 이방인은 당신을 철석같이 믿는데
너희는 어찌하여 믿지 않느냐고 일침을 놓으시기 위함입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이 여인의 믿음만큼 큰 믿음을 갖고 있습니까?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참을 수 있을 만큼 우리는 겸손합니까?
여인을 보며 이런 성찰을 하고 반성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