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은 제자들이 손을 씻고 밥을 먹는
조상들의 전통을 어긴 것 때문에 주님께 따지고 듭니다.
그래서 깨끗한 손, 정결한 손은 어떤 손이고,
무엇이 깨끗하고 무엇이 더러운 것인지,
그 기준이 무엇인지 생각게 되었습니다.
씻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 저는 오늘 제자들처럼 손을 잘 씻지 않으니
저의 손은 더러운 손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요즘 너무 청결을 중요시하다가 건강 면에서 오히려 면역력이 떨어지고
일 면에서는 더러운 일을 피함으로 결과적으로 할 일이 없게 되는 점을 꼬집으며
제가 손을 잘 씻지 않는 것을 정당화 내지 합리화하곤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려서부터 적당히 바이러스와 싸워 이기면서 면역력이 형성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러운 것을 자주 접해서 더러운 것이 더럽지 않게 되어야 환경이 좋지 않은 곳에
가서도 일할 수 있고 저의 경우에는 아무 데서나 사도직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더러운 손이란 어떤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관용적으로 더러운 손이란 더러운 것이 묻은 손이란 뜻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본래 손은 깨끗한데 더러운 것이 묻어 더러워진 손이라는 말이고,
묻은 더러운 것을 깨끗이 씻어내기만 하면 다시 깨끗한 손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더러운 것만 묻지 않으면 손은 정말 깨끗합니까?
더럽다고 하는 것들보다 손이 더 더러운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더러운 것은 더러운 것도 손도 아니고
마음이라는 것이 오늘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분별심(分別心) 곧 가르는 마음에서 더러운 것이 나옵니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것을 설명하는 것으로 원효의 일화가 유명하지요.
중국으로 불법을 배우러 가다가 어느 굴에서 하룻밤을 자다가
목이 너무 말라 바가지의 물을 마셨을 때 그때는 너무도 달콤했는데
깨어서 보니 해골바가지의 물이었고 그래서 그 달콤한 것이 역겨워졌지요.
실제로 인도 갠지스강을 가면 온갖 시체가 떠다니는 더러운 물입니다.
우리는 그런 물을 더러운 물이라고 여기지만 인도인들에게 그 물은 성수입니다.
성과 속, 더럽고 깨끗한 것을 분별하는 마음, 거기에서 더러움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속되다고 하는 그 마음을 경계해야 하고,
하느님 뜻을 따르려고 하지 않는 그 악한 마음 곧 악심(惡心)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 뜻에서 오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듣고 깨달아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그리고 복음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데 바로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살인, 간음, 불륜, 도둑질, 거짓 증언, 중상이 나온다.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히지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