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고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아무리 주님 말씀이라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제 생각에 예언자는 고향뿐 아니라 어디서도 존경과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예언자를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예언자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미 성인들 경지에 오른 분들뿐,
보통의 사람들은 비록 신앙인일지라도 싫어하기 마련입니다.
예언자란 하느님의 파견을 받은 사람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파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느님 뜻에 따라 사람들이 잘살고 있으면 예언자가 파견될까요?
굳이 파견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게 파견된 예언자는 존경할지 몰라도
내게 파견된 예언자를 환영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고,
환영까지는 하지 못하고 억지로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은 혹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사실 신앙인들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싫지만 하느님 때문에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이런 뜻에서 다윗을 성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밧 세바와 간통한 것이 나탄 예언자를 통해 드러났을 때
그는 괴로워하면서도 즉시 나탄의 말을 주님의 말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밧 세바의 남편 우리야,
자기가 죽인 우리야에게 죄를 지었다고 하지 않고
하느님께 죄를 지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우리야가 이 말을 들으면 화를 낼지도 모릅니다.
나에게 죄를 지은 것이지 왜 하느님께 죄를 지은 것이냐고.
그러므로 우리가 성인은 못 되고 그래도 신앙인이라고 생각한다면
나의 예언자 곧 내게 파견된 예언자를 예언자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고,
내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는 사람을 예언자,
곧 하느님께서 내게 보낸 내 예언자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마 집안의 남편에게 아내가,
아내에게 남편이 내 예언자일 것입니다.
아내와 남편을 그저 아내와 남편이 아니라
내 예언자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첫날이 오늘이기를 빕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